diary 250

기특한 초등학생

집에 가는 길에 잠시 광주천 자전거도로를 달렸습니다. 시청 시민광장에서 잔차 세우고 땀을 식히고 있는데, 저 멀리서 아이 2명이 막 달려옵니다. 후미등 깜빡이는 거 보고 왔다네요. 형제인데 동생이 초등학교 2학년이랍니다. 자전거를 타고 싶어 하는데 아직 어려 위험하다며 부모님이 안 사준다네요. 제 잔차 타봐도 되냐고 물어보는데, "넌 키가 작아서 안돼." ㅎㅎㅎ 형은 초등학교 5학년인데 전동보드를 탄다네요.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앞바퀴 들고 자전거 타는 거 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자전거 멋있게 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뭔지 알아?" 그랬더니 바로 튀어나오는 녀석의 대답이 멋집니다. "안전하게 타는 거요."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까, 아버지가 가르쳐줬다고 합니다. 흐뭇한 대화였습니다.

diary 2007.08.02

오랜만에 파란 하늘

오늘 아침 자출하는데 파란 하늘이 보이더군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태풍의 영향인지 바람은 조금 세게 불지만, 파란 하늘을 보니 또다시 야생의 본능이 되살아나는.... 날씨가 궂으나, 맑으나 이 놈의 본능은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군요. ㅎㅎㅎ 전생에 짐승이었남.. 자출하면서 하늘 몇 컷 찍었습니다. 태풍 직후의 하늘은 정말 멋집니다. 대기 중의 먼지가 모두 씻겨가서 쾌청하고, 바람의 영향으로 구름모양도 멋지죠. 자연은 인간이 근접할 수 없는 예술의 극치인 것 같습니다.

diary 2007.07.14

恒産을 찾아서

김훈은 시사저널 기자의 결혼식 주례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물적 토대를 구축하라." 대단한 주례사다. '백년해로 하라'는 썰렁한 주례사에 비하면, 이 얼마나 구체적인 조언이고 지령(?)인가! 확언컨대, '물적 토대'란 곧 밥벌이를 뜻할 것이다. 좀더 풀어보면 생활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객관적, 물리적 조건들이다. 맑스에 따르면, 토대는 상부구조를 규정하고 상부구조는 토대에 조응한다. 경제적 기반이 변화하면 상부구조 전체가 변화한다. 그래서 인간의 의식이 그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 의식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대가 상부구조를 절대적으로 결정 짓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상부구조 나름대로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토대에 조응하는 것 같다. 여하간 분..

diary 2007.06.23

생맥주 한잔

여느 때처럼 9시가 넘어서 학교를 나섰다. 늘 똑같은 길로 다니는 게 오늘은 갑자기 싫증이 났다. 그래서 집 앞까지 거의 도착해서 핸들을 돌렸다. 월드컵경기장으로 갔다. 그 곳 매점에서 캔맥주 하나 시원하게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캔맥주를 안 판다. 피처나 500cc 생맥주를 판단고 한다. 생맥주 500cc를 종이컵에 담아달라고 했다. 2천원을 냈다. 생각보다 비싸다. 매점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자리를 잡고 생맥주를 들이켰다. 시~원하다. 땀 흘린 후 생맥주 한잔. 이 정도로도 금새 기분 좋아진다.

diary 2007.06.12

H선배에게

H선배! 오늘 오랜만에 마음 설레이는 '흥분'을 보았어요. 선배는 기자가 객관적이지 못하고 흥분했다며 자조했지만, 나는 선배의 흥분이 참 신선했답니다. 기자가 객관적인 자세를 갖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 객관성이란 것이 묘해서 때로는 비겁함의 다른 말이 되기도 하지요. 확실하게 편들어야 할 때 '객관성'의 우산 아래에서 무색무취의 입장으로 일관하는 것은 비겁한 태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선배의 흥분은 올바른 태도이면서, 기자의 덕목이기도 할 것입니다. 흥분해야 할 때 그러지 못한다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요. 단, 기자의 흥분이라면 물불 안가리는 뜨거운 흥분이기보다는 시비를 명확하게 가릴 줄 아는 차가운 흥분이어야겠지요. 선배! 탁월한 문장가도 아니고, 투철한 기자정신의 소유자도 아니..

diary 2007.05.31

5ㆍ18 수업연구

교육실습 때 5ㆍ18을 주제로 수업연구 발표를 했다. 1차시 수업 45분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고, 학생들과 교감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 등이 아쉬웠다. 적어도 사실(史實)만이라도 충실하게 전달되었기를 바랄 수밖에. 수업 시간에 나는 국사 교과서에 나온대로 '5ㆍ18 민주화운동'이라고 지칭했다. '5ㆍ18 민중항쟁'이라는 말을 쓰지 못했다. ㅠㅠ 아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쓴 글들의 일부다. 민주화를 위한 광주 시민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불과 내가 태어나기 12년 전의 일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민주항쟁의 영상을 보니 마치 그 자리에 내가 있는 것 같다. 광주에 사는 사람으로서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걷던 그 거리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처참하고 서글픈 역사이지만,..

diary 2007.05.29

고독

고독은 적어도 두 가지가 있다. 홀로 있을 때 느끼는 고독과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느끼는 고독. 후자의 고독은 가슴을 찌르는 송곳이지만, 전자의 경우에 나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이 때 고독은 단순히 외로운 것이 아니라 홀로 있음의 자유를 즐기는 것은 아닐까. 고독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때로는 관계의 성숙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맞닿아 있다면, 고독은 고통과는 다른 것이리라. -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의 시경(詩經) 中 -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

diary 2007.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