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250

빵과 귤

아빠가 좋아하는 빵 사러 퇴근길에 빵집에 들렀다. 프랜차이즈 빵집에서는 볼 수 없는 비주얼. 인스타그램에는 등장하기 힘든 빵이다. 희귀성 때문에 누군가는 찍어 올릴지도 모르겠다만. '아직도 이런 빵집이 있네요'하고 올리지도. 여기 빵은 과하지 않은 맛이 참 좋다. 유명한 개인 빵집에서 맛볼 수 있는 폭식폭신하고 촉촉한 식감은 아니지만. '빵에 무슨 짓을 한거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맛있고 싸고 좋다. 무엇보다 '써비스'가 좋다. 부모님 드릴 거랑 내가 따로 가져갈 거 바구니 넘치게 담아서 드렸더니, "선물할거요? "아니요. 부모님 드릴거에요." 비닐봉투 2개에 나눠 담으시더니 '써비스'로 빵을 막 넣어주신다. 어림잡아 8개는 공짜로 더 주신 듯. 빵 개수도 세다가 포기하셨나. 그냥 2만원만 주라고 하신다..

diary 2018.02.05

모카포트

오랜만에 모카포트를 꺼냈다. 베트남 여행 다녀온 후배가 선물로 준 커피 마셔보려고. 이탈리아 가정집에 무조건 하나씩은 있다는 비알레띠 모카포트. 한국으로 치면 뚝배기 정도 될까. 간단히 커피 내려 마시기 좋다. 불 조절이 중요하므로 불 위에 올려놓고 자리를 비우면 안된다. 보일러의 물이 금방 끓으면서 커피가 추출되기 시작한다. 그러면 바로 불을 꺼야 한다. 물론 머신의 기압을 따라가지는 못해도 집안 가득 퍼지는 커피향도 좋고, 커피 맛도 나쁘진 않다. 크레마도 뭐 보기엔 비슷하게 생긴다. 그런데 베트남 커피는 원래 그런가. 참기름 향이 나는 것 같다. 비빔밥에 커피 넣을 것도 아니고 내 취향은 아닌 듯.그래도 모처럼 모카포트를 꺼내게 해준 건 인정. 처음에 모카포트로 재미를 붙이고, 다음에 장만한 건 네..

diary 2018.01.30

모든 일엔 끝이 있으니

드디어 끝이 보인다. 2018년 임금인상안 고치고 돌리고, 고치고 돌리고. 막막하던 것도 하다보니 답이 보이고. 내가 애초 염두에 두었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도 나름대로 이룬 것 같다. 물론 사업주가 아닌 한 내가 생각한대로만 할 수는 없지만, 나의 재량 안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뭐 결과적으로는 불만을 최소화한다는 건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주도적으로 의견을 내서 거의 모두 관철시켰다는 의의도 있고. 부수적으로 엑셀을 좀더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게 되어서 좋고. 엑셀 개발자들은 참 노벨상이라도 주고 싶다. 평소 칼퇴근을 철칙으로 삼고 있지만, 오늘 같은 날엔 연장근로를 불사해도 좋다. 사무실에 홀로 남아 고도의 집중력으로 급여정산 마무리. 나를 위한 성취감. 모..

diary 2018.01.29

명도동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도동. 풍경만 보면 광주 맞아? 하겠지만, 광주 맞다. 애초 목적지는 다른 곳이었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차 세워두고 마을 돌아다녔다. 마을마다 꼭 있는 정자나무는 느티나무 아니면 팽나무. 여름에는 무성한 잎으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을테지만, 지금은 이파리 하나 없다. 배추도 버려지고, 고추도 버려졌다. 그냥 걷는다. 그냥 걸어야 버려진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diary 2018.01.28

사진 선물

거의 3주만에 드디어 선물 증정. 사진 찍는 사람에게 사진 선물하기 좀 뭐하긴 하지만. 내가 찍은 사진도 영 못봐줄 건 아니니까. 형은 드디어 레이의 이름을 지었다며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유원'. 남자 이름 여자 이름 구분 따위 없이 중성적인 느낌이고 영어 발음으로 'you won' 그래 니가 이겼다 뭐 이런. 유원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유원이 아빠는 몸 좀 챙기면서 일하고.그나저나 사진 선물하는 거 참 오랜만이다. 한창 때에는 책 선물보다 사진 선물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연말에는 1년간 찍은 사진 중에 괜찮은 거 인화해서 액자에 넣어 송년 모임 때마다 선물로 돌리기도 했다. 그 땐 내가 찍은 사진의 9할은 인물사진이었다. 지금은 1할도 안되는 듯.

diary 2018.01.26

샤브샤브 먹고 잡소리

우리는 6명이었던 거다. 퇴근하고 내 차에 탄 건 나까지 5명이었는데.가장 나이차가 적은 녀석이 띠동갑인데 우리는 모두 평등하게 하대하였다. 다른 곳은 몰라도 밥상 위에서는 평등해야 하는 법이니까.그나저나 난 왜 이렇게 어린 녀석들과 맞먹는 게 유쾌한지 모르겠다. 내가 좀 변태인 면이 없진 않으나, 뭐 어떤가 남들 피해주는 일도 아니고. 오히려 서로 즐거우면 그만. 그건 그렇고 내일 최강한파라는데, 자전거 출근을 마음 먹고 있다. 겨울 날씨가 참 요상해져서 이제는 삼한사온이 아니고 삼한사미(3일간 춥고 4일간 미세먼지라나 뭐라나)란다. 이래 가지고 자전거출퇴근을 하겠나. 차라리 미세먼지 실컷 마시는 것보다는 추운 게 훨씬 나으니까. 내일은 감행할 생각이다.어제 퇴근 전에 비가 조금씩 내려서 아 망했네 하..

diary 2018.01.23

혼자서 가라

풍족한 생활이란 걱정 없이 원하는 만큼 소비하는 것이라고 믿게 되면 '좋은 삶'을 고민하는 시간은 희소해진다. 공동체가 소멸되어가는 대중사회에서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가 우리의 삶을 규정한지 오래다. 하지만 소비로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으로는 행복을 유지하기 어렵고 스스로 내면을 느낄 수 없다. 소비는 얼핏 나를 위한 행위인 듯 보이지만, 사실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이타적 행위다. 욕심 나는 내 삶과 일상에 큰 불만이 없다. 하지만 갈수록 진중한 대화를 나눌 사람이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아쉽다. 같이 노는 사람들은 있어도, 함께 생각을 나누고 내면을 보여주며 때로는 격한 논쟁도 불사하는 그런 관계를 새로 맺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가끔 외로움과 권태를 느끼는 까닭이다...

diary 2018.01.20

오래된 책에 쌓인 게 먼지 뿐이랴

부모님 집에 갔다가 오랜만에 예전 내 방에 들어갔다. 벽 하나를 꽉 채운 책장에 오래된 책들. 임용시험 공부할 때 보던 수험서들도 그대로 있다. 아빠는 내가 공부한 게 아깝다며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 나는 임용시험 접으면서 버리자고 막 그랬는데 오래 전부터 그냥 내버려둔다. 아빠의 애잔함도 나름 지켜주고 싶고. 그건 그렇고 먼지 쌓인 책 몇권 골라서 가져왔다. 내 삶의 한 궤적을 보는 것 같아서 순간 울컥. 오래된 책들에 쌓인 건 먼지 뿐은 아니구나. 나에게 이런 시절이 있었구나 하고 잘 살아온 나를 토닥토닥 해줬다.무려 1984년에 초판 1쇄가 나온 니체 전집 중 한권. 내가 초등학생 때 니체를 읽은 건 아니고, 헌책방에서 산 거다. 저 도장은 예스24에서 책 많이 샀다고 사은품으로 보내준 것. 책..

diary 2018.01.16

엄마 반찬

퇴근하고 마트에 들렀다. 오늘은 부모님 집에 가기로 한 날. 과일이라도 사가려는데 과일값 왜 이렇게 비싸냐. 귤은 무슨 금귤이고, 잠깐 망설이다가 딸기 한 상자 들고 나왔다. 오늘도 엄마는 반찬을 한가득 싸놓았다. 예전에는 집에 갈 때마다 엄마랑 옥신각신 했다. 나는 반찬 해놓지 마라고 하고 엄마는 부득부득 하나라도 더 챙겨넣었다. 아빠는 또 옆에 서서 저것도 주고 이것도 주라고 냉장고를 다 털 기세로 거든다. 자꾸 이러면 집에 안온다고 엄포를 놔도 무소용. 나는 알아서 잘 먹고 사는데 왜 사서 고생이냐고 했지만, 엄마는 항상 반찬을 해놓고 나를 기다렸다. 몇년 전부터 마음을 바꿔먹었다. 주면 주는대로 받아오기로. 이건 설득할 일이 아니라, 그냥 받아들여야 할 일로 생각하기로. 모성이 아무리 설득한다고 ..

diary 2018.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