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250

좋은 대화

자신의 생각과 입장에 흔쾌히 동의해주는 사람들에게는 호감을 갖게 마련이다. 반면에 자신의 생각과 입장의 오류를 발견하여 정확하게 지적해주는 사람에게는 감정적 불편함을 느끼는 게 십상팔구다. 하지만 후자가 관계를 오래 지속하고 성숙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미소를 띤 얼굴로 '니 말이 다 맞아'하는 사람은 고마운 사람이다. 그러나 사뭇 진지하고 걱정스런 얼굴로 '내 생각엔...'이라며 다른 생각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매력적이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좋은 대화의 근사한 상대가 될 수 있다. 무슨 말을 해도 '응'과 '그래 맞아'만 반복해대는 사람과 시도 때도 없이(그러니까 눈치없이) '아니야'와 '넌 틀렸어'로 대화를 시..

diary 2010.03.20

나에 대해서 대충 아는 사람들은 내가 옷차림에 무신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를 좀 아는 사람들은 내가 은근히 멋 부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안다. 나에게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나도 꽤나 유명 브랜드의 옷을 즐겨 입으면서 몸 치장에 신경 쓰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옷보다는 밥을 우선해야 하니까 그냥 순응하고 살아왔다. 내 인생에 새옷이라는 건 별로 없었다. 어렸을 적에는 물려 받은 헌옷을 입었고, 다 컸을 때부터는 주변에서 사주는 옷을 마르고 닳도록 입었다. 옷장에 있는 옷들은 어림잡아 4~5년 이상 입고 있는 것들이다. 내가 나서서 옷을 사는 일은 라이딩용 져지나 등산의류 따위가 거의 전부다. 이것도 수퍼헝그리한 것들이다. 남들 장갑 하나 살 돈으로 상,하의 져지에 양말까지도 산다. ㅋ 수트는..

diary 2010.03.03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답다 말할 수 있다

김제동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사진이다. 순천만에 갔다더니, '아름다운 금지'라는 근사한 평을 트윗했다. 이걸 '아름다운 금지'라고 말할 줄 아는 김제동이야말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김제동은 연예계의 보석 같은 존재다. 도시에서도 이런 출입금지가 활개쳤으면 좋겠다. 보행자와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할 곳이 도시에는 지천에 널렸으니까. 이런 금지라면 언제나 대환영이다.

diary 2010.03.01

다른 사람

나이 서른을 넘기면서 깨닫고 있는 사실 하나. 해를 거듭할수록 주변에 비슷한 사람들만 남더라는. 돌아보면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인생관, 비슷한 정치적 지향, 비슷한 취향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무슨 결심이나 작정을 한 것도 아닌데 그렇다. 유유상종 초록동색이라 했던가. 여하간 이렇게 나이 들면 별로 좋지 않겠다는 생각. 나와는 다른 사람을 만나야 관계 속에서 성장할 수 있으리. 우물 안이 편안하긴 해도 인생이라는 장기 레이스를 감안하면 터무니 없이 비좁다.

diary 2010.02.25

중도

2007년 2월 1일 대화는 맥락적이다. 같은 현상이나 같은 대상에 대해서도 맥락에 따라서 전혀 다른 대화가 가능하다. 정해진 것은 없다. 이것을 폼 잡고 말하면, '중도(中道)'라고 한다. 중도는 기계적인 중립이 결코 아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원하는 목적에 다다를 수 있는 최선의 길, 그것이 중도이다. 오로지 그 상황에 맞는 최선의 길. 그래서 정함이 없는 길이다. 인간관계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정할 수 있을까?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다." 천국은 관념적인 기도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실천'을 통해서 획득되는 것이다. 우리 삶 속에서 관계를 실천하는 수많은 방식. 산다는 것은 그것들을 배우고 실험하고 개선해가는 과정.

diary 2010.02.23

어른

2007년 7월 21일 얼마나 좋을까? 딱 마음 먹은 만큼 일이 이뤄진다면. 하지만 세상만사 어찌 그리 되나. 이런 생각도 든다. 마음 먹은 만큼 일이 이뤄지기를 바라기보다는 그 '마음'에 성실했는지 먼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렇게 하면 어른이 될 것 같다. 마음 먹은 만큼 일이 되지 않더라도, 좌절보다는 그 '마음'의 진심을 잃지 않는다면, 나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늘 기쁜 가운데 아득한 슬픔 떨쳐지지 않는다. 슬픔은 슬프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기쁨이 두렵기 때문에 슬픔을 놓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diary 2010.02.21

연탄재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2008년 2월 9일 자전거 타고 혼자 쏘다니다가 어느 들판에서 찍었다. 연탄재를 저렇게 짓뭉개버린 것을 보니, 그 사람은 여러 사람에게 수없이 뜨거운 사람이었나 보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단 한번도 뜨거워 본 적이 없는 사람이나 많은 사람에게 한결같이 뜨거운 사람이나 외로운 것은 마찬가지라는 사실. 어차피 외로운 사람. 정호승의 말처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연탄처럼 한번이라도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해줄 수 있다면, 행복할까? 자신의 몸을 태운 연탄은 재가 되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다. 잊혀지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diary 2010.02.21

공중전화

2005년 11월 10일 공중전화. 군대 시절, 공중전화 앞에서 몇 십분 동안 줄 선 수고 끝에, 그리운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떨렸던가. 별로 나눈 말도 없는 것 같은데 전화카드의 잔액은 왜 그렇게 뚝뚝 떨어졌는지. 휴가 첫날, 부대를 나서자마자 공중전화를 찾아 아는 이들에게 '휴가 나왔다'며 신나게 떠들기도 했다. 휴가 마지막날, 부대 복귀 직전에도 공중전화를 찾았다. 그 착잡함이란! 제대 이후로 공중전화에 대한 애틋함은 기억나지 않는다. 지갑 속에서 전화카드는 사라지고, 우리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졌다. 언제 어디서든 바로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다는 편리함과 신속함은 공중전화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요즘엔 핸드폰으로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고, 신용카드를 대신하기도 한다. 바야흐로 핸..

diary 2010.02.21

사랑은 실존적으로

2007년 9월 9일 어쨌든, 사랑은 교훈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실존적으로 하는 거다. 어느 시에 그런 구절이 있었다. 서른 살이 넘으니 세상이 재상영관 같다고. 단 하나의 영화를 보고, 보고, 또 보는 것 같다고, 대체 우리는 어떻게 성숙해야 하는 것일까...... 선은 텅 비고 추상적이기만 하고, 일상은 자고 먹고 섹스하고 사냥하는 욕망의 습관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니. -전경린 소설 中에서- 사랑은 무언가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되어지는 것은 아닐지. 사랑은 어떠한 가치가 아니라, 그리 되는 삶의 형태는 아닐지. 분명한 것은 제도가 사랑을 책임져주지는 않는다는 것.

diary 2010.02.21

2007년 8월 27일 시인 정호승은 이런 시를 썼다.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시인은 '빈 호주머니 털털 털어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시인을 위해 단 한번도 술을 사주지 않았다. 왕년에는 그랬다. 술 한잔이 달콤했고, 오가는 술잔에 정을 담았으며, 거나한 취기에 감히(?) 혁명을 입에 올리기도 했다. 술은 로맨티스트를 낳았고, 혁명가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술은 한낱 술에 불과하다는 사실. 술은 전혀 로맨틱 한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혁명의 도구도 아니었다. 아! 술은 단 한번도 나의 마음을 달래준 적이 없다. 오히려 음주의 뒤끝은 늘 민망하고 미안하며, 허무하다. 이 짓을 얼마나 더 거듭하면, 취기에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diary 2010.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