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250

여름을 보내며

겁나게 무더웠던 지난 여름을 돌이켜보니 드는 생각. 에어컨의 편의성을 누리며 여름을 버티긴 했지만, 에어컨에 감사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반면에, 구워 삶을 듯 내리쬐는 태양열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에, 땀에 흠뻑 젖은 내 몸에 불어오는 숲의 바람에 감사하고 고맙다는 생각은 종종 했던 것 같다. 습기와 더위를 순식간에 날려주는 에어컨 바람에 마냥 기분 좋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나무 그늘에 앉아 있어도 여전히 무덥고, 숲 속에서 바람이 불어도 온몸의 끈적거림은 떨어지지 않지만 기분 만큼은 좋았다. 입을 틀어막아도 '아, 좋다'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조건 없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것들로부터 느낄 수 있는 행복감. 그런 것이지 않을까. 집에 오는 길 선선한 밤바람에 감사하며 오는 ..

diary 2010.09.15

현금카드 한장

방에서 안경을 벅벅 닦고 있었다. 아빠가 부른다. 귀찮다는 듯 안경을 닦으면서 '왜요?'하고 갔다. 아빠는 현금카드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걸 보자마자 '아따 됬당게요'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얼마 전에도 한번 그랬던 적이 있다. 엄마가 없을 때 아빠는 나에게 현금카드를 내밀었다. -돈 필요할 때 꺼내 써라. 비밀번호는 알지잉? 아빠 차 번호. -돈 필요 없는디. -그래도 먹고 싶은 거 있으믄 사 먹어야제. 교통비도 하고. -아따 내가 돈 쓸 일이 뭐가 있당가. 필요 없어라우. -아따 그래도 그게 그것이 아니제. 안 써도 됭게 그냥 갖고 있어라. -됐어라. 그렇게 나는 퉁명스럽게 거절하고 아빠를 피해버렸던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엄마가 없을 때 아빠는 다시 현금카드를 내밀고 있다. -아따.....

diary 2010.09.04

만화책

내년에 부모가 될 어느 부부를 위한 선물로 을 샀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선물은 책으로 하는 편인데, 저렴한데다가, 교양 있는 척 폼도 좀 나고, 선물을 주게 된 이유와 관련된 의미도 부여되고, 여러모로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선물 하기 전에 미리 읽어볼 수 있는 얕은 속셈도 부릴 수 있다. 은 대학 시절 학생회실로 배달되는 한겨레를 꼬박꼬박 찾게 한 이유 중 하나였다. 솔직히 그때에는 '소시민적 삶'에 대한 치기어린 거부감도 없진 않았으나, 그냥 외면하기에는 너무 재미있었다. 다운이는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고 그랬다. 이번에 구입을 위해 인터넷 서점에 갔더니, 벌써 7권까지 나왔다. 다운이가 벌써 초등학교에 갔다니. 그나저나 이러다가 다운이가 청년이 되고, 연애를..

diary 2010.08.28

스킨을 바꾸고

오랜만에 블로그 스킨을 바꿨다. 내 삶의 기조 중 하나인 '단순하게 살자'에 맞춰서 아주 심플한 스킨으로 간택했다. 이미지는 단 한개도 없다. 내가 원하는대로 스킨 소스를 수정하느라 삽질(은 가카만 하는 게 아니다)을 하긴 했지만 썩 마음에 든다. 어느 때부턴가 단순한 게 좋아졌다. 영화 의 유명한 '진심주' 장면에서 정유미가 이런 대사를 친다. "가장 단순한 게 가장 좋아질 때가 온다" 단순한 게 좋아지는 것은 단순하게 살다보니 그리 되는 경우보다는, 복잡하게 살다보니 이게 안 좋은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 그렇게 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단순하게 살기 위해서 복잡한 것들을 힘겹게 정리해야 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단순하게 산다는 건 결국 단순한 문제가 아닌 거다.

diary 2010.08.28

홍세화

'나이'라는 걸 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에고 벌써 나이가 이 만큼'이라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늙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종종 몇몇 인물들을 상정해놓고 나름 롤모델을 정해보는 짓을 한다. 나도 저렇게 늙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인물들 중 으뜸은 홍세화 선생이다. 홍세화 선생의 글과 말과 실천, 그리고 외모와 패션까지. 홍세화 선생은 긴 코트가 참 잘 어울린다. 와 나도 저렇게 나이 들었으면 좋겠다. 홍세화 선생을 보면 사람이 나이 들어서 멋있어지는 것은 좋은 옷이나 재력, 권위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어떤 생각을 하고 그것을 어떻게 삶 속에서 행동하는가에 달린 일인 것 같다. 홍세화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건 대학 1학년 때 그의 ..

diary 2010.08.14

옷걸이로 만든 넷북 받침대

팬리스 넷북 최대의 적은 역시 발열이다. 내가 쓰고 있는 넷북은 팬리스에다가 SSD를 장착해 완전무소음을 실현한 DELL mini 9. 딱 필요한 것만 딱 알맞은 성능으로 구현해내는 나의 귀염둥이. 웹서핑을 할 땐 발열을 별로 못 느끼는데, 동영상을 좀 돌리면 제법 따뜻해진다. 발열 때문에 퍼포먼스가 느려진다거 하는 일은 없지만, 이쁜 놈이라 오래오래 고장없이 쓰고 싶다. 팬을 돌리는 건 완전무소음을 무색케 하므로 고려 대상이 될 수 없고. 공중부양 시켜주기로 했다. 동영상 볼 때 간혹 넷북 바닥과 책상 사이에 볼펜 따위를 끼워넣어서 미약하나마 발열에 도움을 주기도 했는데, 이번에 확실하고 폼 나게 공중부양 시켜주기로 맘 먹었다. 준비물은 세탁소 옷걸이 1개와 펜치(라 쓰고 뻰찌라 읽는다) 1개. 모양을..

diary 2010.07.28

동구청의 회신

'너릿재 옛길 멧돼지' 관련하여 올린 민원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답변을 받았다. 동구청 소관이 아니었군. 너릿재도 무등산공원관리사업소 소관이라구. 어쨌거나 관리사업소에서 하루빨리 조치를 취해주길. 안녕하세요! 먼저 귀하의 제보에 감사를 드립니다. 무등산 옛길 구간 야생동물 침몰 표지판 설치 관련은 광주시청 무등산공원관리사업소에 해당하는 업무로 귀하의 제보내용을 담당부서에 이첩후 해당 장소에 표지판을 설치토록 건의하겠습니다. 더운 날씨지만...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담당자 : 동구청, 총무과 ***(☎608-****)

diary 2010.07.23

너릿재에서 만난 멧돼지 새끼들

늦은 밤 X와 너릿재 옛길로 드라이브를 갔다. 자전거 타고 오를 때에는 '숨 차 죽겠는데 매연까지 들이마셔야 하냐' 하면서 자동차 타고 오는 사람들을 무척 싫어했는데. 평일 늦은 밤이라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하고 갔다.고 변명해본다. 난 가끔 뻔뻔하니까. ㅋ 올라가던 중에 놀랍게도 멧돼지 새끼 4마리와 조우했다. 전조등 불빛에 뭔 물체들이 비치길래 '뭐야 저거' 했는데, 보니깐 멧돼지 새끼들이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놀라서 바로 산으로 도망갈 줄 알았는데, 자동차 불빛에 엄청 겁 먹었는지 길 위에서 우왕좌왕 한다. 보는 우리는 신기하고 놀랍고 귀엽고 막 그랬는데(그래서 사진까지 찍었다능), 녀석들은 또 얼마나 쫄았을까 하고 뒤늦게 미안스럽긴 하다. 우리는 끝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새끼들..

diary 2010.07.22

10년 전의 일기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를 들으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오늘은 낡은 책상 서랍에서 / 10년이나 지난 일기를 꺼내어 들었지 / 왜 그토록 많은 고민의 낱말들이 / 그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지 정말 좋은 노래는 종종 '이거 완전 내 이야기잖아!' 하게 만든다.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보았다. 낡은 책상 서랍은 아니고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꺼내긴 했지만. 뭐. 정말 뭔 놈의 '고민의 낱말들이 그 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지' 모르겠다. 답 안나오는 관념들을 붙잡고 혼자 폼잡고 있었던 모습을 생각하니 얼굴이 다 화끈거린다만. 다들 그럴 나이 아니었냐 막 이래. 나는 누구인가, 누가 나인가 / 2000년 *월 *일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

diary 2010.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