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250

이기주의

1. 대학 1학년 때였나 싶다. 지금은 사라진 것으로 아는데, 오월대라는 무시무시한 조직이 있었다. 전남대에서 운동권 남학생들이라면 누구나 몸 담았던 '준군사조직'. 서울 쪽에서는 사수대라고 불렀으나, 광주전남권 대학에서는 '전투조직'이라고 했다. 여하간 오월대는 가투에서 전경과 쌈박질하는 게 주요 임무이긴 했으나, 가끔 학내규찰활동도 했다. 늦은 밤 학내를 돌아다니면서 취객 정리, 불량(?) 고삐리 군기 잡기, 오토바이 폭주족 단속, 여학생 보호 같은 경찰 노릇을 하는 거다. 학우들의 안전을 위한 활동이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깃발 들고 구호 외치고 노래 부르며 돌아댕기는 남학생 떼거리를 보고 학우들이 오히려 위협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만. 그건 그렇고. 어느날 긴급히 학내규찰 소집령이 떨어졌는데,..

diary 2010.07.02

엄마의 월드컵

아... 으윽.... 아... 아아... 윽.... 오메오메... 윽... 어째야쓰까 어째야쓰까.... 오메오메... 아... 윽윽... 아아... 오메오메... 왜 저렇게 위로 찬다냐... 어째야쓰까 어째야쓰까.... 와~~(한국 골!!)... 음메음메... 아아...어째 긍까잉... 흐미흐미.... 내가 다 죽겄네잉... 내가 이런디 저것들은 오죽 할까잉... 오메오메... 어째야쓰까 어째야쓰까... 아.. 윽... 아... 왜 저런다냐 왜 저런다냐.... 오메오메 어쩌까잉...(경기종료) 경기 내내 터져 나오는 엄마의 격정적 감탄사 때문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를 즐길 수 있었다. 그나저나 한국팀은 너무 아까운 슈팅들이 많았다. 경기 내내 근사한 장면들도 많이 만들어냈고. 경기내용만으로는 우르과..

diary 2010.06.27

'구하라'가 좋아라

지붕킥이 끝난지도 석달이 지났다. 아무리 개콘을 꼬박꼬박 챙겨봐도 지붕킥의 빈자리는 여전했다. 그러나 요즘 지붕킥만큼 재미 들린 게 생겼다. 장르도 같은 시트콤. 공중파 방송이 제작한 건 아니고, 이름도 낯선 '인디시트콤'이다. 말 그대로 인디 씬에서 제작한 시트콤. 감독은 윤성호. 영화 을 만든 그 사람이다. 요거 보면서도 알쏭달쏭 보고나서도 알쏭달쏭했던 기억만 남은 영화다. 여하간 윤성호 감독이 만드는 인디시트콤 (줄여서 '구하라'). 요거 물건이다 물건. 일주일에 한편씩 올라오는데 현재 5편까지 나왔다. '구하라'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불만은 딱 두개다. 다음 편을 보려면 일주일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편이 5분 정도로 너무 짧다는 것. 이 외에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자 없다.고 믿는다..

diary 2010.06.26

늘 해오던 것

도대체 넌 기분이 나쁜 때가 언제냐고 묻길래 좋아하는 게 잘 안될 때 기분이 나빠지고 기분이 나빠지니까 신경질이 나고 신경질이 나니까 욕이 나오고 욕 하다 보니까 명박이 떠오를 뿐이고 부부젤라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데 세상은 원래 더러운 거라는 말에 정말 세상은 좋았던 적이 없을까 궁금한데 불만이 기록되지 않은 시대가 없고 살인이 중단된 적도 없고 질병과 오염에서 벗어난 때가 없고 전쟁과 강간은 끊임없이 저질러지고 이야 이럴바에 문명의 발달이 무슨 소용이냐 싶다만 그거라도 해왔으니까 이 정도야 라고 안심하다가 아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하고 다시 돌아가보면 정말 좋아한 게 맞아 라는 질문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어서 아휴 기분이 나쁠 때에는 항상 질문들이 던져지는 게 갑갑하고 질문도 가끔은 돌과 같아..

diary 2010.06.19

'체계와의 불화'

2007년 5월 8일 실습 2주째, 체계가 개인을 얼마나 무력화하는지를 체감하는 중이다. 체계의 견고한 그물은 끊임없이, 야금야금 개인을 옭아매고 무장해제시킨다. 그리하여 믿음을 조각내고, 조금씩 체계에 기대어 자기합리화를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체계 속에서 맺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타인의 타성적인 행동, 매너리즘에 빠진 집단의 모습을 자기반성의 기회로 삼기보다는 자기변명의 근거로 내면화해버리기 쉽다. 버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체계 속에서 개인의 자율과 자존을 지키기 위한 전략으로 철학하는 사람 k는 '체계와의 불화'를 말했다. 체계와 화합하는 것이 아니라, 쉼 없이 갈등을 만들고, 스스로 긴장을 가진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공교육이라는 체계는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지만, '공'이 어떤 '공'이..

diary 2010.05.24

벽걸이 형(?) 헤드폰 거치대 제작기

아쉬운대로 저렴하게 헤드파이로 음감하는데, 헤드폰을 보관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 지금까진 책장 빈 곳에 대충 구겨 넣어두고 살았는데, 나름 마음 먹고 산 놈이라 미안하기도 하고. 단선 걱정도 되고 해서. 짱구를 좀 굴려봤다. 테이블 위에 두고 쓸 수 있는 스탠드형 헤드폰 거치대 상품들이 있긴 하다. 요로코롬 멋지구리한 놈도 있다 말이지. 근데 헤드폰 하나 걸어두는데 화폐씩이나(?) 쓰긴 좀 그렇고. 책상도 좁아서 스탠드 형은 별로다. 방법이 없을까 하다가 아이디어가 번쩍! 세탁소 옷걸이로 벽걸이 형을 만드는 거다. 요런 걸 구상했다 이말이지. 돈 안들고, 공간활용도 좋고. 근데 헤드폰 위쪽을 감싸고 있는 저 비니루 같은 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택배시대에 없어선 안될 뽁뽁이다. 헤드폰 기스 날까봐 감아놓..

diary 2010.05.12

개콘 포에버

아. 어제 개콘을 했구나. 드디어. 하고 부랴부랴 다운 받아 봤다. 무려 한달 만인가.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추모분위기 어쩌고 하며 개콘 방송을 한달 넘게 중단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 설마 한달동안 동혁이 형 큰집으로 불러서 '쪼인트' 깐거야? 이런 초현실적인 현실이야말로 개콘보다 더 한 개그가 아니냐. 내가 거의 유일하게 보는 TV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나를 분노케 했다. 지들 맘대로 인민의 웃음을 통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정신 상태의 소유자들은 정말로 추모를 하는 것이냐, 추모.하.기.로. 한 것이냐? 세상 참 더러워지긴 했다. 세상 더러워도, 개콘 포에버!!!!!!!

diary 2010.05.03

기네스 필통

기네스 드래프트 써져 유닛용 캔으로 필통 만들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캔 따개가 있는 윗부분을 잘라냈다. 도구는 와인 오프너에 달려 있는 작은 톱니칼. 와인병의 주둥이를 감싸고 있는 알루미늄 캡을 벗겨낼 때 쓰는 거. 캔을 앞에 놓고 적당한 도구가 없을까 생각하던 중 퍼뜩 떠오른 게 와인 오프너였다. 톱니 칼로 캔 상단의 외곽선을 따라 절단 작업을 했다. 얇은 알루미늄이라 많은 힘이 들진 않는다. 캔의 외관에 기스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게 관건. 또 캔이 찌그러지지 않도록 적당한 힘으로 잡아야 한다. 다 잘라낸 다음엔 날카로워진 곳을 사포로 문질렀다. 물로 헹궈서 말리니 기네스 필통 완성. 만족스럽다. 휴일엔 오직 나만을 위한 노동의 시간을 갖는다. ㅋ

diary 2010.03.29

마음 가는대로

마음이 가는대로 한다는 것은, 그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해주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나쁜 결과를 낳는 경우도 다반사다. 마음이 가는대로 한다는 것은, 그것이 편하고 쉽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제법 큰 용기가 필요하고 고난을 비켜갈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러니까 '내 맘대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래서 마음이 가는대로 하라는 조언은 올바른 것일 수 있으나, 꽤 신중해야 할 일이다. 분명한 건, 마음 가는대로 하는 사람과 마음 가는대로 하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diary 2010.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