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250

첫눈

광천동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진다. 주변은 밤인양 어둡다. 비가 내린다. 제법 굵은 빗방울. 아! 눈은 아니다. 첫눈은 아니다. 그냥 겨울비다. 문제는 나에게 우산이 없다는 거다. 버스에서 내렸다. 비는 더욱 퍼붓고, 간혹 눈인 것 같기도 하다. 빠르게 편의점을 찾는다. 뛰어들어간다. 일단 젖은 머리와 옷을 턴다.계산대에 있던 알바생이 묻는다. "눈 와요?" "아니요. 저건 비입니다" 알바생은 첫눈이기를 기대한 것 같다. 그럴 나이다. 실망한 듯 한 여자애의 얼굴을 보고, 슬며시 미소 짓는다. 우산 하나를 집어들고 값을 치른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우산을 펼쳐 들고 걸어간다. 30미터 쯤 걸었을까. 주변이 좀 환해지는 듯 하다. 둘러보니 우산 쓴 사람이 안 보인다. 비..

diary 2010.12.08

삼성이 아직도 한자를 쓰는구나

삼성이 사내망에 노조설립하자는 글을 올린 직원을 해고했다. 이따위 기업이 '초일류'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노조가 무슨 귀신이냐, 왜 그렇게 벌벌 떠는지 모르겠다. 진짜 아마추어같이... 그나저나 아직도 한자 투성이 문서를 보게 될줄이야. 무슨 '초일류'가 요따구냐. 시대에 뒤쳐지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공무원 조직에서도 거의 한자가 사라져가는 추세인데, 시대를 선도한다는 대기업 문서에 한자라니. 삼성 조직 문화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diary 2010.11.27

블로그 이름

블로그 이름을 바꿨다. 예전에 홈페이지 운영할 때부터 communi21은 나의 아이디이면서 홈페이지 이름이었다. 어쩌다 이름을 바꿔볼까 고심했던 적도 있긴 했다만, 귀찮아서 그만 두곤 했다. 블로그로 옮겨오면서 communi21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communi21의 유래(?)를 살짝 소개하자면 이렇다. 1999년 복학한 나를 선배 A가 컴퓨터 앞에 앉혔다. 나에게 이메일을 만들어준다고 하였다. 그딴 거 만들어서 어디다 써먹냐고 속으로만 튕기고 고분고분 앉아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의 컴퓨터활용능력은 독수리 타법에 윈도우가 뭔지도 모르는 완전 컴맹 수준. 여하간 전혀 이메일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나에게 A 형은 아이디를 뭘로 하겠냐고 물었다. 대충 아무거나 하라고 했더니, A 형은 이름처럼 중요한 거라..

diary 2010.11.20

일관성 좀 지키고 살자

살다보니 별 희한한 일도 다 생긴다. 조선일보에 실린 글을 내가 추천하게 될줄이야. 지난달 2일 조선일보 논설주간 송희영의 칼럼인데, 현대건설 매각 입찰에 관한 내용이다. '국민주 방식으로 매각'이라거나 '저소득층에 주식 할인 판매' 같은 대안까지 나온다. 어쨌든 한국의 재벌가들은 염치가 그렇게 없냐. 니들이 말아 잡순 부실기업을 국민 세금으로 살려놨더니, 그냥 미친 척 하고 잡수시겠다고? 하긴 니들은 뼛속까지 그런 놈들이긴 하다만. 공적 자금만 있고 공적 책임은 없는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명박정부 때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고. 걸핏하면 시장자유 노래하던 놈들이니까 마음껏 시장자유 누리다가 뒤지는 게 맞잖아. 시장자유에 어긋나게시리 넙죽 공적 자금 받아챙기는 놈들. 하여간 일관성이 없어, 일관성이. 진..

diary 2010.11.15

소주

1. '소주가 맛있다'는 말을 나는 안 믿는다. 한잔 마시고선 뜨끈한 국물 한숟갈 떠먹거나 하다못해 '크~윽' 소리라도 내지 않으면, 참기 힘들 정도로 독한 소주가 맛있다는 건 말이 안된다. 게다가 소주에 무슨 향이 있나. 아, 레몬소주 같은 게 있긴 하다만. 하지만 소주를 참말로 맛있게 마시는 형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엔 만난 적도 없고, 지금은 뭘 하고 사는지도 알 수 없지만, 소주를 맛있게 마시는 사람이었다. 그 형은 소주잔을 한번에 확 털어넣는 법이 없었다. 물을 마시듯 여유롭게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러고 마지막 한방울까지 남김없이 빨아 마셨다. 난 그 형이 소주를 마시는 걸 보면서 '빨아 마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잔 바닥이 보일 정도로 기울어졌을 때 그 형의 입에서는 '쭈~욱' 소리가 ..

diary 2010.11.13

기네스 PPL

영화 에 나오는 장면. 저 여자가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내눈에 포착된 검은색 캔. 앗! 기네스다. 단박에 알아챘다. 그리고 한캔을 꺼내서 따개를 따자 솟아오르는 크림거품. 천천히 들이키면서 관객에게 캔에 인쇄된 기네스 브랜드를 대놓고 보여준다. 테이블 위에 놓여진 여섯개의 기네스 캔. PPL이 확실하다. PPL까지 하는 걸 보니 기네스가 한국시장에도 마케팅을 좀 해보려는 생각인 것 같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웬만한 술집에선 기네스 구경하기도 어려웠는데. 얼마전 약속장소로 가다가 좀 화려한 치킨집에서 기네스를 파는 걸 보고선, 기네스 너무 흔해지는 거 아니냐 했더랬다. 기네스가 흔해지면 안되는데. 안타깝다. 내가 말릴 수도 없고.

diary 2010.11.08

남의 집에서 남의 집을 들고 쳐웃고 있다. 그리고 그 '남'은 동일 인물. 박 고수가 산좋고 물좋은 곳을 찾아 집 짓는다는 소리를 들은 건 좀 오래된 일. 몇년 만에 드디어 집을 짓긴 지었다. 사람이 들어가 살기엔 턱없이 미니멀하고 깔고 앉으면 박살나는 우드락을 소재로 만든 집이긴 하다만. 집은 집이다. 실제 공사현장에서 저 모양이 어디까지 유지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그러나 저러나 박 고수에게 저런 소년같은 면모가 있다는 점에 놀랐다. 성취감은 결과에서 오기도 하겠으나, 행복은 과정없이 올 수는 없을 것이고. 대충 박 고수가 실제 집을 지었을 때 느낄 행복감도 부럽긴 하겠다만 저 보잘 것 없는(?) 우드락 집을 지을 때 가졌을 행복감이 마냥 부럽고 아니꼽고 질투 나고 그런다.라고 하지만 축복하는 마..

diary 2010.10.30

<대물>, 자꾸 손발 오그라들게 할끄야?

드라마 을 보게 된 이유는 딱 두가지다. 정치드라마이고 고현정이 나오기 때문. 정치드라마나 법정드라마는 웬만하면 챙겨보는 편이다. 고현정은 중학생 시절부터 나의 여신. 고현정이 나오는 정치드라마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만. 갈수록 이거 정말 봐야하나 싶을 정도로 참고 보게 된다. 정치 외압설은 그러려니 하고 박근혜 띄우기설 같은 건 뜬금없다 싶은데, 유치한 설정들 때문에 모처럼 나온 정치드라마를 즐기기 힘들다. 부패 정치인들 까는 것은 진부하긴 해도 참고 보겠는데, 서혜림이라는 정치인 캐릭터는 좀 아니다. 어른들 세계에 어린아이를 밀어넣은 것처럼 생뚱맞은 설정들이 너무 많다. 국민의 편에 서는 정치인이라든지, 우리가 원하는 정치인 그런 상을 그리는 건 좋은 일이다만, 꼭 그렇게 바른생활 교과서를 어리숙..

diary 2010.10.28

기권

오늘은 광주 서구청장 재선거날이다. 난 투표 안했다. 투표권을 갖게 된 이후 투표 안한 건 처음이다. 이유는 투표하고 싶은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면 간단하지만, 글쎄 마음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다. 진보신당 후보가 있으면 묻지마 투표를 하고, 민노당 후보라도 있으면 '비판적' 투표를 한다. 나름 투표원칙으로 삼고 있는데, 이번에는 단일화되는 바람에 지지 후보가 없었다. 참여당 서대석 후보가 야4당 단일후보로 나서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지의사는 생기지 않았다. 선거현수막에 '노무현 비서관 출신'이라고 홍보하는 것도 영 마뜩치 않고. 선거운동 기간 중 윤난실 진보신당 부대표가 서대석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유세를 보면서 한쪽 마음이 휑 했다. 물론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면 정치인이 아니겠다만..

diary 2010.10.28

역시 개 새끼는 똥개 새끼가 제일 이쁘다. 2004년 1월 새해맞이 무등산 산행 중 약사사에 들렀다가 발견한 놈들. 원래 둘이 대가리 맞대고 밥 먹고 있었는데, 저 아래 식사 중이신 놈이 뒤에 앉아 있는 놈을 무자비하게 밀어내버리고 밥그릇을 독차지한 상황. 별다른 저항도 못해보고 밥그릇을 빼앗긴 놈이 어찌나 처량하게 쳐다보던지 안아주려고 했으나, 그순간 홀연히 나타난 스님 가라사대, '이놈들 옴 옮았으니 만지지 마시오' 하더라. 스님의 경고가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스님, 안녕히 계세요'하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나의 첫 디지털카메라 올림푸스 C-2000Z로 찍었다. 이 때만 해도 디지털카메라라는 말조차 낯설었던 때다. 사진 찍고 그 자리에서 LCD로 보여주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우와우와 하던 그런 시절...

diary 2010.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