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250

11월

오늘 11월 13일. 나에게는 특별한 '11월 13일'의 기억이 있다. 1996년 11월 13일. 먼저 영원한 노동자의 벗 전태일의 기일이었다. 또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이 날 입시한파 때문에 꽤나 추웠다. 그리고 내가 1심 선고공판을 받는 날이기도 했다. 전태일의 기일에 선고를 받는다는 묘한 기분으로,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벌벌 떨며 호송버스에 올랐다. 법정에서 재판장은 판결이유를 설명하고 징역형을 선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재판장의 입에서는 '그 집행을 *년간 유예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잠시 멍 때렸다. 당연히 집에 가는 줄 알았고, 변호사도 그랬고, 같은 감방 아저씨들도 '원종이 좋겠네. 집에 가고' 그랬는데. 아침에 감방을 나오면서 아저씨들이 시키는대로 내가 ..

diary 2009.11.14

이젠 안녕, H!

H에게 내가 너를 만나고 알게 된지 참 많은 시간이 지났다. 첫만남은 늘 그렇지. 티끌 하나 없이 순정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다는 것. 첫만남은 그렇게 숭고함마저 느껴졌지. 많은 일들이 있었어. 너와 함께 영화와 음악을 즐길 수 있었지. 졸필이나마 여기저기 글을 남기는 일도 네가 없었다면 많이 힘들어졌을거야. 그렇게 많은 일들을 너와 함께 겪어내고, 너로 인하여 내가 즐겁고, 너로 인하여 내가 울기도 했지. 그런건가봐.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들이 익숙해져. 익숙해지는 만큼 관계의 깊이도 성숙해지면 좋으련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야. 익숙함은 막연한 믿음을 잉태하지. 믿음이 막연하다는 건 무턱대고 믿어버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믿음은 실로 지극한 정성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익숙해지면 잊어..

diary 2009.10.19

전화카드 한장

전화카드 한장 / 조민하 작사, 작곡 언제라도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전화를 하라고 내손에 꼭 쥐어준 너의 전화카드 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고맙다는 말 그말 한마디 다 못하고 돌아 섰네 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동지라 말했는데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전화카드도 사야겠어 그리고 네게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 나는 그저 나의 아픔만을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런 입으로 나는 늘 동지라 말했는데 오늘 난 편지를 써야겠어 전화카드도 사야겠어 그리고 네게 전화를 해야지 줄 것이 있노라고 줄 것이 있노라고 참 좋아했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듣고 '좋네, 씨바' 했더랬다. 14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가사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는 유일한 민중가요다. ..

diary 2009.10.13

그들이 사라졌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뭔가 이상했다. 날마다, 몇 년이고 왔다갔다 한 길인데 왜 이렇게 낯설지 했는데. 도로의 한 차선과 인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노점들이 모조리 사라진거다. 염주사거리 광주은행에서부터 소방서 가는 쪽으로 50여미터의 길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이 동시에 증발해버렸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무슨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늘 화난 듯한 표정이어서 저러면 장사 잘 안될텐데 걱정되던 야채장수 아저씨가 보이지 않는다. 왼쪽 무릎이 좋지 않아서인지 다리를 절뚝거리던 아저씨다. 어쩌면 화난 표정이 아니라 통증 때문에 인상을 찌푸린 것일지도 모르는 아저씨. 이동식 그릴 위에 소시지를 굽던 할머니와 배불뚝이 아저씨도 사라졌다. 이들은 모자지간이었다. 코딱지만 한 텃밭에서 힘겹게 경작했을 야채들을 인도 위에서 다..

diary 2009.10.09

에구머니나!

공사 일사 역사 지리 합계 경기 19/23 34/10 53/74 34/15 140/122 서울 13/9 19/7 19/15 18/9 69/40 인천 0/0 3/5 16/4 3/5 22/14 강원 0/0 5/0 5/0 5/0 15/0 충남 0/0 8/10 8/12 13/6 29/28 충북 0/0 4/4 7/4 0/2 11/10 대전 2/0 4/3 3/2 5/4 14/9 경북 0/0 9/6 6/7 7/8 22/21 대구 0/0 2/6 9/6 5/6 16/18 울산 0/0 9/0 7/14 5/5 21/19 경남 0/0 8/8 9/7 8/6 25/21 부산 0/0 2/0 4/4 2/0 8/4 전북 0/0 5/4 5/4 5/4 15/12 전남 0/0 10/0 12/0 9/0 31/0 광주 0/0 5/2 5/2 5..

diary 2009.10.08

미리 우는 사람

눈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짐작했겠지만, 기쁨의 눈물과 슬픔의 눈물. 하지만 기쁨의 눈물에도 근원에는 진한 슬픔이 묻어 있다. 찬란한 기쁨을 맛보기 위해 겪어야 했던 모든 패배와 좌절, 실망, 괴로움, 번뇌, 희생, 상실, 불안 등이 없다면 기뻐서 흘리게 될 눈물은 없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흘리는 눈물에는 그저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닌거다. 당연하게도.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고 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사람은. 글쎄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모든 눈물에는 슬픔이 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가슴 찌릿찌릿하게 만드는 눈물은 미리 울어서 흘리는 눈물이다. 미리 우는 사람을 두번 본 적이 있다. 미리 울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백만분의 일만 헤아리더라도 가슴을 찌르는 송곳을 피할 길이 없다...

diary 2009.10.02

후배 A에게

선배라는 존재의 기능 중 하나는 후배에게 뭔가 배울 점을 주는 것이다. 여기서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좋은 점을 배워서 그 본을 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쁜 점을 보고 '나는 안 그래야지'하고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전자의 기능을 하는 선배가 되고 싶었으나, 살다보니 후자의 기능에 가까웠던 것 같다. 잘 되는 모습(그것이 꼭 돈을 잘 번다거나, 번듯한 직장을 구한다거나, 좋은 조건으로 결혼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을 후배에게 보여주는 것은 선배로서 좋은 기능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반대도 선배의 좋은 기능이 된다. 전자보다는 좀 떨어지지만. 잘 안되는 모습, 늘상 실패하는 모습, 궁상맞은 모습이 다반사인 선배도 후배에게 좋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런..

diary 2009.09.30

가을하늘이 좋은 이유

가을 하늘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멋진 구름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질 무렵 이런 구름이 낀 날은 무척 운 좋은 날이다. 적절히 붉은 기운과 어우러진 구름, 구름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내리꽂히는 빛살까지 볼 수 있다. 오늘은 억수로 운이 좋은 날인가보다. 멋진 하늘을 배경으로 막 이륙한 비행기를 우연히 볼 수 있었으니. 때마침 나는 자전거를 세우고 하늘을 감상중이었고,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 폰카에 담을 수 있었으니.

diary 2009.09.25

호두과자

독서실에서 돌아왔는데, 책상 위에 호두과자가 있다. 오늘 아버지가 결혼식 때문에 서울에 다녀온다고 했는데, 내려오는 길에 샀을 것이다. 아버지는 호두과자를 좋아한다. 아들인 나도 좋아한다. 스무살 때부터 지금까지 운전을 생업으로 살아온 아버지. 아버지는 고속도로를 달려야 하는 장거리를 뛰고 돌아올 때면 항상 호두과자를 사왔다. 돈 쓰기가 무서워서 작은 봉지 하나를 사서 당신이 몇 개 먹고, 절반 이상을 남겨서 집으로 가져오곤 했다. 이건 거의 내 차지였다. 새벽에 집에 들어오더라도 어김없이 호두과자를 갖고 오셨다. 나는 자다 일어나 호두과자를 먹기도 했다. 아버지는 호두과자를 맛있게 먹는 내 모습을 좋아했다. 택배차에 밀린 아버지의 화물차는 이제 장거리를 뛸 기회가 거의 없어졌다. 호두과자 먹을 일도 거..

diary 2009.09.21

서른 세번째 가을

서창의 들녘은 며칠 사이에 누런 빛으로 바뀌고 있다. 수확의 계절.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 여름 마지막 태풍이 지나간 직후의 하늘을 가장 좋아한다. 그리고 가을 하늘의 대부분을 좋아한다. 하긴 가을하늘을 좋아하지 않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한국 국가의 가사에도 등장하는 가을하늘. 첫새벽의 얼어붙은 겨울 하늘을 또 좋아한다. 태어나 서른 세번째 가을을 맞이하는 중이다. 저녁무렵 가을하늘을 넋 놓고 한참을 바라본 적이 없다면 뭔가 문제 있는 삶이라고. 나는 생각하며 살았다. 가을하늘의 절정은 저녁 무렵 뉘엿뉘엿 저무는 해다. 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시 한편 있다. 서른 세번째 맞이하는 가을, 저무는 해 앞에서 시를 읊조리고 돌아오다. 저녁 무렵 / 도종환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들은 ..

diary 2009.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