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250

고마운 사람들

첫 직장을 그만 둔 이후 내가 했던 일들은 거의 대부분 주변 지인들의 제안과 알선 덕분이었다. 첫 직장은 내 힘으로 들어가서 내 발로 나왔다. 그리고 첫 직장을 그만 두게 된 계기부터 해서, 지금까지 내가 했던 돈벌이들은 다 남들 덕분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고 보면 나는 순전히 백수로만 지냈던 시절은 거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꿈으로 삼았던 신문사 공채를 준비했고, 낙방하자 바로 첫 직장을 구했다. 어느날 지인 A가 모 종합일간지 지역주재기자로 나를 추천해주겠다 하였는데, 권한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 기회는 날아갔다. 그 즈음 지인 B의 알선으로 다른 일을 하게 되었고, 그 일을 그만 두고 역시 지인 C의 추천을 받고 지원한 모 신문사에 최종합격하였으나, 뭔놈의 배짱이었는지 가지 ..

diary 2009.09.17

6년 후, 다시

- 순번 : 41 - 제목 : 소주 한잔 걸친 밤에.. - 작성 : 조원종 - 일자 : 2003-08-23 00:32:43 - 카운트 : 42 - 본문 : 흠.. 회사에서 모종의 작전을 펼치려다 예기치 않은 장애물 때문에 작전시행을 내일로 연기하고 내 독립공간으로 기어 들어왔다. 저녁 식사를 하고, 노트북 토닥거리다 소주 한잔 생각나서 모 선배에게 수작을 부렸다. 내 수작에 '얼씨구나' 하고 고의로(?) 넘어온 모 선배와 만나 포장마차에서 닭갈비에 소주 2병 비우고 들어왔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직장생활이란 게 엿 같은 이유 중 하나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갈수록 멀어져 가게 하는 시스템이란 것. 세상에 자신의 밥벌이와 이상을 일치시키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개인의 이상과 근접한 밥벌이를 제공..

diary 2009.09.11

미스테리 해바라기

해만 바라본다고 해서 해바라기라던데, 여러분은 왜 해를 등지고 있는 것입니까? 살짝 비켜서 있는 것도 아니고 해를 완전히 등지고 있는 해바라기. 저무는 해라고 무시하나? 물어보니, 다 커서 그렇단다. 해바라기라고 해서 주야장천 해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란다. 어려서는 영양분이 많이 필요하니까 줄기가 해를 향하는 향일성이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생장이 어느정도 수준에 이르면 더이상 해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러니까 결국 꽃이 피면 더이상 해를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뜻. 얍삽하군. 사람들은 해바라기에 대해 일편단심의 순정 이미지로 생각하는데, 정작 해바라기께서는 필요할 때는 햇님만 바라보다가 필요가 다 하면 뻥 차신다 이거네. 그럴 줄 몰랐다. 아폴론을 사랑한 요정이 아폴론만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꽃이 되었다..

diary 2009.09.10

염주주공 여행

엄마가 그랬다. 오늘 우리집에서 꾸레아 모임을 한다고. 단원들이 우리집에 와서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밖에서 사먹겠다고 했다. 독서실 근처 김밥나라에 가서 라면과 김밥을 사먹었다. 배가 두둑한 채 바로 책상 앞에 앉아있기 뭐해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여느 때처럼 월드컵경기장 쪽으로 갈까 하다가 염주주공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오래 전부터 동경(?)해오던 곳. 어렸을 적 운암주공아파트에서 살았던 기억 때문일까. 아파트의 생김새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아파트단지 전체가 풍기는 분위기가 아련한 추억처럼 좋은 느낌이다. 내가 지금 얹혀 살고 있는 아버지의 아파트도 15년쯤 된 오래된 아파트인데, 염주주공은 지은 지 24년이나 되었다 한다. 염주주공의 가장 큰 매력은 단장되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작은 규모..

diary 2009.09.09

보기좋은 짝궁

누군가 처음부터 두 그루의 나무를 나란히 심었을까? 어찌 하여 강변에 나란히 나무가 자라게 되었을까? 사람이 한 것이라면 따뜻한 미소를 짓게 하는 일이고, 자연현상이라면 신기한 노릇이다. 자전거 타고 가다가 강과 나무들, 그 나무들 사이에서 낚싯대를 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어우러진 풍광이 멋드러졌다. 자전거를 세우고 한참을 넋 놓고 지켜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결과물이 저래... 낚시하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네. 어쨌거나 오래오래 더불어 지내시길.

diary 2009.09.08

후배

2003년 라는 이름으로 개인홈페이지를 운영한 적이 있다. 적적한 회사생활에 소소한 활력소가 되어주었던. 백업해둔 HTML파일을 뒤적거리며 옛추억(?)에 잠기다가, 우쭐하게 하는 글이 있어 옮겨둔다. ㅋㅋ - 제목 : 경희대에서 후배들을 만나고.. - 작성 : 조원종 - 일자 : 2003-08-14 12:12:01 - 카운트 : 34 통일선봉대라고 후배들이 경희대에 있다는 첩보를 접수! 접수 후 만나러 갈 생각이 조금도 없었지만 모 후배가 식칼같은 비수를 가슴에 꽂는 바람에 경희대까지 몸을 이끌고 가게 됐다. 후배들을 기다리면서 다른 선배와 통닭에 생맥주를 먹었다. 이윽고 경희대 정문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고XX이라는 후배를 맞이했다. 같이 왔다는 오존학번 후배 2명을 만나러 경희대 안으로 진입! '중대..

diary 2009.09.06

Community Chest

이 가구의 이름은 'Community Chest'다. 사진 보고 무릎을 치고, 이름 보고 키득거렸다. 재미있는 건 각 chest의 모양과 크기만 다른 것이 아니라 손잡이가 모두 다르다는 점. 어디에 뭘 넣어놨는지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살면서 하나씩 열어보는 것도 재미있겠는 걸. 나중에 만들어봐야지. 음... 중간에 두세 군데 정도 빈 공간으로 두고 작은 화분 넣어 두면 더 이쁠 것 같다. 그리고.... 각 Chest들을 완전 고정하지 말고, 조립식으로 해서 가끔씩 커뮤니티 구조를 바꿔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chest 대신에 'Community bookcase'로 만들어도 좋겠네. ㅋㅋ

diary 2009.09.05

'수리'

철학하는 사람 k는 이렇게 말했다. 반복되지 않는 행동을 일러 용서할 수 있는 '실수'라고 하는데, 반복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고장난 기계를 '용서'하지 않고 '수리'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이 실수의 뜻이다. 관계에서 일어나는 실수는 대개 안타까운 것들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선한 마음과 신중한 고민 끝에 행동했더라도 상대방에게는 악행이거나 성급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는 언제 어디서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순간 어긋나버리는 것은 일도 아닌 무시무시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중한 관계일수록 배려의 긴장 속에서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실수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지기도 한다. k의 말마따나 ..

diary 2009.07.15

노땡큐

나는 가끔 A선배와 소주 한잔 나누는 걸 좋아한다. 그나 나나 그리 수다스러운 편은 아니다. 특히 A선배는 1분 이상 말을 지속하지 않을 정도로 '과묵'하다. 둘 사이에 화수분처럼 이야기 소재가 무궁무진한 것도 아니다. 둘이 공감할 만한 소재라고는 한때 음악 매니아였던 A선배에게 라디오헤드가 어떻고, 그린데이가 어떻고, 니르바나가 어떻고 하는 것 뿐이다. 그것도 깊이 있는 음악평론은 꿈도 못 꾸고, 그냥 아는 곡 이름이나 들이대고, 커트코베인의 죽음이 자살이냐, 타살이냐 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다. 정리하면 술자리에서 떠들썩하거나 종종 웃음을 터뜨리는 재미 따위는 거의 기대하지 않는. 뭐 그런 '썰렁한'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A선배에게 '소주나 한잔 합시다'라고 전화한다. A선배에게는..

diary 2009.07.09

끓는 점

물은 100°C에서 끓는다. 10°C에서부터 열을 가하여 80°C가 되었다고 해서 물은 끓지 않는다. 80°C에서부터 열을 가하여 99°C가 되었다고 해도 물은 끓지 않는다. 임계치다. 임계치를 넘어서지 못하면 결국 '변화'는 없다. 아무리 열심히 열을 가했다 하더라도 끓는 점을 넘어서지 못하면 물은 끓지 않는다. 50°C가 부족했든 1°C가 부족했든 상관이 없다. 그냥 물은 끓지 않은 것이다.

diary 2009.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