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39

정하지 말 것

생태주의나 사회주의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생태주의자나 사회주의자로 살 필요는 없다. 이념과 사상이 타인에게 과시하는 스타일이 되는 것은 좀 얄미운 일이지만, 반드시 삶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도 좀 그렇다. 이념과 사상이 삶이 되는 것은 스스로에게 근사한 일이고 타인에게 존중받을 일이다. 하지만 꼭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한다면, 그러한 이념과 사상이라면 난 도망가련다. 난 그렇게 이념과 사상에 충실한 삶에는 흥미도 없고 자신도 없으니까. 이념이 삶이 되는 것과 삶이 이념이 되는 것은 좀 다른 것이지 않나. 그런 생각도 좀 들고. 오랜만에 박홍규 선생의 근황을 기사에서 보았다. 긴 인터뷰를 꼼꼼히 읽으면서 '역시 박홍규!' 했다. 누구의 삶이든 존중받을 자격이 있지만, 존경받을 수 있는 삶은 흔하지 않..

opinion 2018.08.25

입당

7월27일 정의당에 당비 납부하는 당원이 되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말로만 지지한 것이 미안하고 미안해서 이거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중앙당에서도 이제서야 좀 충격과 슬픔을 추스리는 것 같다. 오늘 집 우편함에 커다란 봉투 하나가 들어 있었다. 발신인은 정의당. 알 수 없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봉투를 뜯었다. 이정미 대표의 편지가 적힌 엽서와 신입당원 가이드북이 들어 있다. 이정미 대표의 편지글을 읽으면서 또 가슴이 먹먹해진다. 나의 첫 당적이었던 민주노동당에 가입할 때에는 설레고 들떴다. 내 삶을 바꾸는 일이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잠시나마 당 활동가를 직업으로 삼기도 했다. 그런 열정과 뜨거움은 이제 없다. 나도 나이가 들었고, 내 입 하나 건사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살다보면 의식과 생각은 바뀌고, ..

opinion 2018.08.10

노회찬을 위하여

노회찬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안타까움이 끝이 없다. 어디선가 보았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결국 외로운 것이라고. 지울 수 없는 가난, 우울, 감당할 수 없는 슬픔 등을 자살의 원인으로 쉽게 생각하지만, 결국 외로운 것이라고.어제 오전 일하다가 포털사이트에서 '속보' 제목을 보고 나도 모르게 '뭐야 이거' 했었다. 심장이 좀 빨리 뛰는 것도 같았다. 몸이 좀 떨리는 것도 같았다. 오보인가, 바라기도 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노회찬의 죽음은 사실이었고, 이런 저런 뉴스들이 쏟아졌다. 하나 하나 읽고, 댓글도 읽고 아무리 읽어도 나는 그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노회찬은 진보정치의 아이콘이고 간판스타가 맞다. 진보정당은 그의 인..

opinion 2018.07.24

나의 투표 원칙

나는 투표가 '신성한 국민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민은 오직 투표할 때에만 자유롭고 투표를 마치고 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는 루소의 말에도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투표할 때에도 우리는 노예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투표권이 있는 한 거의 투표를 했다. 어찌되었든 투표는 현실정치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이긴 하니까. 그 영향력이란 것이 당선과 함께 사라지는 허무한 것이라 하더라도. 딱 한번 기권을 한 적이 있다. 기권과 무효표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결국 기권을 선택했다.징역살이 하면서 처음 진보정당에 관심을 가졌고, 엄마 아빠의 아들이라는 사실보다 민주노동당 당원임을 더 자랑스러워 했던 시절도 있었다. 민주노동당 당원 사진동호회 운영위원도 맡고, 최초로 당선된 당 비례대표 광역의..

opinion 2018.06.12

미완의 5·18

내가 뜨거웠던 시절, 5·18은 항상 거리 위에서 최루탄과 짱돌 속에서 외치는 이름이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시험에 나오는 것)만 알았던 대학교 1학년 시절, 그 해는 전두환과 노태우 등 학살자들에 대한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해였다. 그해 여름,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이라고 발표했고, 광주는 난리가 났으며, 거리는 '학살자 처벌'과 '5·18 특별법 제정'이라는 구호로 덮였다. 결국 김영삼 대통령은 특별법 제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전두환과 노태우 등 학살 주범들이 법정에 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곧 특별사면되었다.처벌과 단죄는 턱없이 불충분했고, 진상규명은 '군사기밀'과 양심선언 부재 등을 이유로 미완에 그쳤다. 제대로 이뤄진 것 없이 5·1..

opinion 2018.05.20

노동절

2001년 4월 말경 나는 어느 비정규직 노조 파업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캐리어사내하청 노조는 '전국 제조업사업장 최초'의 비정규직 노조 파업을 했다. 대학생 신분으로 인터넷한겨레 사이버기자단 하니리포터와 시민의 소리 시민기자 활동을 하던 나는 무작정 파업현장을 찾아가서 인터뷰하고 취재해서 기사를 송고했다. 노조 설립을 이유로 집행부 전원을 부당해고한 사측에 항의하고, 정규직 노동자와의 임금 및 처우 차별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 5월 1일은 무조건 '노동절'이어야 했고, '근로자의날'은 국가와 자본의 언어라며 혐오했다. 그랬던 나는 이제 어느 사업장의 '근로자'가 되어, 손수 '근로자의날'이라고 인쇄된 휴무 안내문을 만들어 게시한다.그리고 내가 보수정당이라고 생각하는 민주당의 문재인..

opinion 2018.05.02

남북정상의 극적인 만남

9시15분부터 외래 TV 앞에 앉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박근혜 탄핵심판 선고 생중계보다 관심이 덜 했고, 직원들은 광주 쌍촌동 무단횡단 교통사고 블박영상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다.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에서 살지만 '정상회담 왜 하는거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고, 취재차 온 외신 기자는 남의 나라 정상들이 만나는 순간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는 유홍준 선생의 말이 이런 일에도 통하는건가. 그건 그렇고. 세상에는 수많은 만남이 있을테지만 이 만큼 세계가 주목하고, 또 지켜보는 이들을 울고 웃게 하는 극적인 만남도 없을 것 같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손 맞잡고 환히 웃고 있는 사진이 1면 전면을 가득 채우는 파격적..

opinion 2018.04.27

까짓 '댓글' 없어도 그만

말하자면 나는 '드루킹'이 누구인지 그가 한 행위가 어떤 건지 세세하게 알고싶은 생각이 없다. 그저 범죄혐의가 있다면 처벌 받으면 그만. 뭐 이 정도 생각이다. 하지만 '댓글과 여론' 이런 주제에는 관심이 많다. '댓글 조작'이 '여론 조작'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메카니즘이나, 언론을 통해 재생산되는 거나, '베댓' 따위가 '여론'의 지위를 얻는 괴상한 현상, 이런 건 참 많은 논쟁이 필요하다.여론이라는 게 언론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쉽게 입에 오르내리고, 정부나 정치인들은 항상 여론의 향배에 좌지우지되는 것 같고, 전문가나 여론조사 업체에서는 통계적으로 여론을 파악해서 '예측'이라는 걸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여론은 바람과 같아서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방향을 알 것도 같은..

opinion 2018.04.26

'이명박 구속'을 넘어서

이명박이 구속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제 시작이다. 지난 10년 검찰과 특검의 수사에도 끄떡 없었던 이명박이 구속된 것을 보면 그들의 10년이야말로 우리에겐 잃어버린 10년이다. 박근혜와 최순실은 국정을 농단했고, 이명박은 국가전반을 농단했다. 이명박의 구속과 처벌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 주변에서 권력으로 사익을 취한 자들을 빠짐없이 법정에 세워야 한다. 특히 '자원외교'의 진상은 반드시 규명하고 나랏돈과 권력으로 사익을 챙긴 자들은 모조리 처벌해야 한다.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이명박. 구속된 전직 대통령 4명. 전두환과 노태우 같은 자들은 차치하고라도, 어찌 되었든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와 이명박. 박근혜처럼 이명박도 형식적이나마 대국민 사과 한마디 없다. 주권을..

opinion 2018.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