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39

덕분입니다

아침에 눈 뜨자 마자, 베란다로 나가서 바깥 상황을 살폈다. 아 많이도 쌓였다. 이른 새벽부터 경비 아저씨가 수고하신 덕분에 이미 염화칼슘이 뿌려져 있다. 모르고(또는 모른척) 살아서 그렇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하는 사람들 덕을 우리는 보고 산다. 경비 아저씨들에게 머슴 부리 듯 갑질하고, 최저임금 인상으로 관리비 몇천원 늘어나는 게 아까워서 남의 생계를 끊는 일도 서슴지 않는 그런 세상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긴 하다만. 최저임금이란 게 노동을 시키고 이 돈보다 더 적게 주면 안된다는 취지인데, 어떤 사람들은 노동 시키고 이 돈만 줘도 된다고 받아들인다.그건 그렇고, 우리는 노동자를 자기 먹고 살려고 돈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쉽게 생각해버린다. 그러니까 다 자기를 위해서 일하는 거니까, 감사할..

opinion 2018.01.11

'이상해진'(?) MBC 뉴스

"기자 윤리, 저널리스트의 정체성을 지키지 못한 점 깊이 반성합니다. MBC 기자들을 대표해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2017년 12월 26일 박성호, 손정은 앵커의 새 뉴스데스크 첫방송. 박성호 앵커는 사과와 반성으로 시작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사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일을 우리는 생각 만큼 자주 목격하지 못한다. 개인과 개인의 사적인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하물며 언론의 사과를 우리는 받아본 적이 있었나. 단순한 정정보도나 방송사고 차원이 아니라 언론인의 책무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가 한번이라도 있었나. 과문한지 몰라도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오늘 뉴스데스크에서도 '거듭나겠습니다'라는 타이틀을 단 리포트가 나왔다. 당장에 큰 변화를 이룰 수는..

opinion 2017.12.27

참사

세월호가 거치돼 있는 목포신항과, 팽목항(진도항)에 다녀왔다. 크리스마스라서 나같은 사람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세월호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세월호'는 그 자체로 참사이고, 우리가 기억하고 기억해야 할 가슴 아픈 사건이다. 정치의 무능력과 배신을 다시 한번 체험하고, 그들은 결코 우리 편이었던 적이 단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또다시 깨우치게 되었다.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는 우리에게 거대한 각성의 아픔이다. 하지만 '세월호'는 그 날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년간 청소년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라는 사실에도 '세월호'는 있다. '사고'나 '재난' 때문에 우리 곁을 떠나는 것보다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생을 ..

opinion 2017.12.25

후원은 권리 없는 선택 : '롱패딩 후원 논란'

한 복지재단을 통해 매월 일정금액을 한 아이에게 후원하는 직장인이 올린 글 때문에 '롱패딩 후원 논란'이란 게 벌어졌다. 전말은 이렇다. 본인이 후원하던 아이를 위해 롱패딩을 사주겠다고 하자, 아이는 아이돌그룹이 광고모델로 나오는 브랜드 롱패딩(20만원이 넘는다는)을 사달라고 했다. 후원받는 아이의 신상보호를 위해 모든 연락은 재단을 통해서 전달되었다. 아이의 반응에 후원자는 '기분이 상했다'고 하고, "날 후원자가 아닌 물주로 생각했다는 감정이 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후원하는 아동이 피아노도 배운다. 형편이 어렵지 않은 것 같다"고도 했다.후원은 좋은 실천이고 절실한 누군가에게는 매우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후원자는 후원받는 이가 행여나 상처 받지 않도록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

opinion 2017.12.22

혐오와 맹목, 언론자유마저 외면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행사를 취재하던 한국기자와 청와대 행정관이 중국 경호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 이 뉴스를 보고 '미친놈들'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날까지만 해도 아직 정확한 전후 상황이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경호원의 기자폭행은 명백한 잘못이기 때문이다. 동영상만 봐도 경호상의 필요에 따른 제압이라기보다는 폭행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물리력으로 제압하는 게 아니라, 주먹과 발길질로 구타하는 장면이 그대로 나오지 않는가. 설사 피해 기자가 사전에 합의된 동선을 벗어나 무리한 취재를 하려고 했다 하더라도(현재 확인된 바로는 청와대가 허용한 취재였다고 한다), 물리력으로 접근을 못하게 막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정상적이다. 주먹과 발길질로 구타하는 것이 정상적인 경호라고 볼 수 있을..

opinion 2017.12.16

신세계 '주35시간 근무제' 톺아보기

지난 8일 신세계그룹이 내년부터 '주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겠다는 뉴스가 비중있게 보도되었다. OECD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는 한국에서 '대기업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의미 있는 뉴스이긴 하다. 그런데 '한걸음 더 들어가'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렇다면 임금은? 언론은 왜 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걸까? 단순화해서 계산해보자. 2018년 최저임금 7,530원주 40시간 : 월소정근로시간 209시간 월급 1,573,770원주 35시간 : 월소정근로시간 183시간 월급 1,377,990원임금감소분 : 195,780원 2020년 최저임금 10,000원주 40시간 : 월소정근로시간 209시간 월급 2,090,000원주 35시간 : 월소정근로시간 183시간 월급 1,830,000원임금감소분 : 26..

opinion 2017.12.14

다시 출발선에 선 MBC

다시 출발선이다.MBC 새 사장에 '해직자' 최승호 PD가 선임되었다. 좋은 일이다. 반가운 일이다. 다행한 일이다.최승호 사장은 첫 출근날인 오늘 보도국 인사를 단행했다. 이명박근혜 시절 '유배'되거나 해직당했던 이들을 제자리로 돌려놨다. 최승호 사장과 함께 MBC는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섰다. MBC의 진보가 아니라 정상화다. 지난 9년은 언론의 책무와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 비정상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첫단추를 끼운 것이다.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이 사내이메일에 "우리도 이제 다시 출발선 앞에 서자"며 사원들의 초심을 강조한 것도 이제서야 비로소 정상적인 경쟁이 가능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JTBC가 영향력과 신뢰도 조사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해온 것은 그들의 능력과..

opinion 2017.12.08

속사정 1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듣는 것이 모든 걸 말해주지는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데 대단한 지혜나 학습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곧잘 잊는다. 몰라서가 아니라 그게 편해서다. 보이는대로 단정하고 들리는대로 결론내는 일은 무척 쉽다. 뇌과학에서는 인간의 뇌는 최대한 빨리 상대방을 파악하기 위해 직감에 의존한다고도 한다만. 저 녀석이 내편인지 아닌지, 그러니까 나한테 해가 될 놈인지 이로울 놈인지를 빨리 판단하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 이러한 뇌의 전략에 속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성찰과 반문'이라고 뇌과학자 장동선은 말한다만. 그건 그렇고. 우리는 상대방의 속사정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무관심하면서, 겉으로 보고 듣는 것만으로 이러저러할 것이라고 쉽게 단정한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러..

opinion 2017.11.25

언론의 분탕질

또 그짓이다. 자극적인 소재로 무대를 만들고 강제로 선수들을 올려보내 싸움을 붙인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짓은 성공적이다. 이국종 교수와 김종대 의원은 그렇게 언론의 무대 위에서 희생양이 되었다.김종대 의원의 표현이 과한 것을 비난한다면 타당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한 본질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이국종 교수도 환자에 대한 정보를 과하게 공개한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국민의 '알권리' 차원이라고 하지만, 환자 상태에 대해서 그정도 디테일까지 과연 알아야 하는 걸까.두 분 다 어떤 면에서 과한 것이 있었을지 몰라도, 이 정도 싸움으로 번질 정도는 아니다. 김종대 의원은 할말을 한 것이고, 이국종 교수는 최선을 다해 환자의 생명을 구했다. 그 와중에 실수나 잘못이 있다면 서로 지적하고 반박하..

opinion 2017.11.23

미수습자 5명 : 우리는 최선을 다했는가?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가족들이 해양수산부의 수색종료 방침을 수용하고 18일 합동추모식 후 목포신항을 떠나기로 했다. 오늘 기자회견문에서 가슴을 찌르는 문장. "일각에서는 저희 가족들을 못마땅하게 보신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가족을 잃고 3년 7개월 동안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풍찬노숙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거리에서 싸워야 했던 이들이 '못마땅한' 부류들에게 인륜을 기대할 수 있을까. 차라리 무관심이 그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륜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그들의 '못마땅한' 시선은 사적 이익을 위한 추악한 정치행위이지 인륜으로 논할 것은 아닐지도. '국민세금 축낸다'고 손가락질하는 이들은 자기들이 내야 할 세금은 착실히 내고 있는지도 의문이고. 그리 소중하고 신성한 '국민세금'을 제 돈인 듯 가져다..

opinion 2017.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