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후원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뭐 가끔 메일을 받긴 하지만, 작심하고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장문의 편지글은 거칠게 요약하면 '돈이 없어 할일을 못한다'는 내용이다. 옳은 일을 하는데 돈이 없어 좌절하는 것 만큼 서글픈 일도 별로 없다. 후원하기 웹페이지를 열어놓고 한참 망설였다. 그러다가 지갑을 열어도 되는 이유를 찾아냈다. 올해 월급이 올랐다. 마음 바뀌기 전에 후다닥 정보 입력하고 CMS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 단문을 남기고 창을 닫았다.솔직히 망설였습니다. 쥐꼬리 월급에 이래도 되나 싶었습니다.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래도 되나'가 아니라 '이래야 한다'고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대신 몸으로 뛰고 계신 분들을 위해 이 정도는 해야 하겠지요. 아직 ..

    저임금 노동자에게 '파격'은 없다

    신세계그룹이 1월1일부터 주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 연말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라며 홍보에도 써먹었고, '파격'이라는 칭찬도 적지 않게 챙겼다. 시행 한달이 되어간다. 우려했던, 아니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 하다. 역시 저임금 노동자에게 '파격'은 '꼼수'가 되어 돌아온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계의 오랜 숙원인데, 사측의 꼼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뭐 이런 게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노동시간 단축과 생활임금 보장을 어떻게 노동자의 것으로 가져올 것인가. 업무 집중도 향상과 효율성 제고와 같은 사측의 논리에도 노동계에서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건 사측의 일이라고 치부할 게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과 삶의 질 개선을 함께 가져가기 위한 방법론에 대해서도 고민..

    참사 2

    2009년 1월 20일.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참혹한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참사'라고 했다. 6명이 생목숨을 잃었고, 매년 이 즈음 사람들은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한다. 9년째다. 9년 동안 무엇이 해결되었고, 무엇이 달라졌는가. 재개발사업은 '도시재생사업'으로, '뉴타운'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강제철거와 약탈식 재개발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돈이면 다 된다'는 신화와 가난한 사람의 터전을 짓밟고 뻗어 올라가는 건물을 부럽게 바라보는 세태는 오히려 더 견고해지지 않았는가. 당시 진압작전의 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일본 오사카 총영사와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했고 드디어(!)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아 20대 국회의원(자유한국당)이 되었다. 지난 9년간 이명박근혜 정..

    인생의 좋은 자세 '아님 말고'

    고만고만한 또래의 젊은 남자들이 징집당해 모이고, 먼저 온 순서대로 서열이 정해지며, 서열이 높을수록 어줍잖은 권력을 쥐고 아래 서열에게 뭐든지 할 수 있게 되는 바로 그곳. 현대성은 고사하고 근대의 합리성조차 들어오기 전에 모조리 반납했어야 했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곳. 거기서 나는 성선설을 선택했다. 물론 맹자의 성선설 같은 동양철학을 고민한 결과는 아니고. 저들은 원래 착한 사람들인데 군대라는 특수조직이 악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거라고 믿기로 했다는 거다. 맹자의 비유대로 물은 원래 아래로 떨어지는 본성을 갖고 있는데 외부의 힘에 의해 산위로 거슬로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니까 '외부의 힘'을 선한 것으로 바꿔놓으면 원래대로 선한 사람들이 될 것이라는 나름대로 논리적인 전개.라고 하지만 중2 수준의..

    개헌을 위하여

    2018년 한해동안 한국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개헌이지 않을까. 아직 연초라서 그런지 개헌을 하긴 하는건가 싶은 미적지근한 분위기이긴 하다만.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기자회견에서 개헌을 언급하기도 했고 앞으로 점점 분위기가 달아오르긴 할거다.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할건지 다음에 할건지 여의도의 진흙탕 싸움이 예상되긴 한다만, 어쨌든 개헌은 할 것이다.개헌 한다고 세상이 갑자기 장밋빛이 되는건 아니다만, 국가와 사회의 기본 원칙을 다듬고, 법률 이하 제도와 규정을 강제하는 최상위법이라는 면에서 개헌은 중대사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큰 그림 완성하기 전에 우리의 요구를 마구잡이로 내던져야 하는 거 아닌가. 개헌은 기회다. 단순히 헌법을 고치는 선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