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39

여성의 권리

3월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낙태는 여성의 권리다'에 대하여 잠깐 학습하다. 무엇보다 낙태찬성은 생명경시이고, 낙태반대는 생명존중이라는 식의 이분법은 옳지 않다고 본다. 낙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어미의 심정이 어찌 생명을 경시하는 행동일 수 있겠는가. 또 낙태를 불법화하여 낙태시술을 음지로 내몸으로써 임신여성의 생명을 위험하게 하는 일이 과연 생명존중인가. 국가를 비롯한 낙태반대론자들이 진정으로 여성과 태아의 생명, 행복을 소중히 여긴다면, 출산과 육아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함께 강조해야 이치에 맞다. 하지만 일단 낳고 보자는 식으로 일관하는 국가와 일부 낙태반대론자들을 보면, 그들이 진정 걱정하는 것은 재생산권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노동력 공급을 위한 적정한 인구증가가 아닌가 생각된다. 낙..

opinion 2010.03.08

반도체와 노동자의 죽음

3년 전 3월 6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동료였던 이숙영씨, 같은 생산라인의 엔지니어였던 황민웅씨도 백혈병으로 숨을 거뒀다. 이후 '반도체 산업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라는 단체가 꾸려져 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나는 노동자 건강권 침해에 대한 조사와 산재인정을 위한 활동 등을 하고 있다. 반도체 공장피해자 현황 및 작업환경(방사선, 화학물질등)관련 제보들 보기 (반올림에서 정리)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 언론이 보도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전혀 취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피해 노동자 유족들에 따르면, 꽤 많은 기자들이 취재를 해갔고, 방송국 카메라도 여러 번 촬영해갔다고 한다. MBC의 '피디수첩'..

opinion 2010.03.08

좋은 사진

자가용 없는 집이 거의 없듯이(우리 집엔 없다. 흠...) 한 집에 디카 하나 정도는 갖추고 사는 세상이 되었으나, 넘치는 건 사진이 아니라 이미지다. 디카의 대중화는 사진의 대중화보다는 이미지의 홍수에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게 내 생각이다. 뭐 사진과 이미지는 과연 다른 것이냐 하는 건 매우 중요한 질문이긴 하다. 하지만 사진은 이미지와는 다른 고유의 영역을 지키고 있는 건 분명하다. 아직까지는. 내가 지인들의 사진을 찍고, 여유 있을 때 인화해서 선물하는 까닭은 스토리텔링을 원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스토리텔링이 산업이나 마케팅 영역에서 주로 회자되지만, 원래 스토리텔링은 말 그대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사진은 순간의 정지된 화상이다. 좋은 사진은 아름다운 구도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무엇보..

opinion 2010.03.03

사형제 합헌 유감

헌법재판소가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렸다. MBC에서 뉴스특보로 생중계를 하길래 내심 '이거 위헌 결정 나는 거 아냐'라고 기대했는데. 기자들이 위헌 결정에 대한 모종의 정보를 얻었으니까 생중계까지 하는 거 아니냐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아니다. 기자들도 싱거웠던지 대충 합헌 결정 소식만 전하고 생중계 끝. 사형제 존폐에 대한 토론이나 법리 논쟁은 사실 매우 싱겁다. 양쪽의 논거는 너무 뻔한 말들이라서. 이건 팩트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라 어떤 믿음의 영역에 속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예를 들면, 사형제가 범죄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그렇다. 외국의 통계만 들이대도 그냥 박살나는 논거다. 미국 사례만 봐도 개구라가 되는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냥 믿는다. 왠지 그럴 것 같으니까. 사형 선고를 받..

opinion 2010.02.25

무서운 서비스

김종철 선생님이 시사IN에 쓴 글을 읽고, 일단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내 보관함에 담아두었다. 그런데 큼지막한 배너광고가 눈에 확 들어온다. "부산광역시 당일배송 서비스를 실시합니다" 오전 10시 전에 주문하면 부산에서는 그날 바로 주문한 상품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와! 좋겠다' 할 사람들도 있겠으나, 나는 좀 뜨악하다. 알라딘에서 파는 물건들이 무슨 시초를 다투는 종류도 아닌데 당일배송이 정말 필요한 서비스냐 하는 것. 물론 소비자들이 원하는 물건을 빨리 받을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래도 이건 좀 무서운 일이기도 하다. 속도경쟁, 시간경쟁은 단순히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수준에서 끝나지는 않을테니까. 게다가 그 편리함이라는 것도 결국엔 누군가의 가혹한 노동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으니까.

opinion 2010.02.24

교양 없는 사회

보행자가 도로를 횡단하려는 상황에서 한국과 영국의 비교 (과학적 연구결과는 절대 아니지만, 갔다와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동의할 만큼 사실성이 농후함) 공통점 ☞ 운전자와 보행자가 서로 눈치를 살핀다. 차이점 영국 ☞ 운전자는 속도를 줄이고, 보행자는 망설임 없이 도로를 건너간다. 한국 ☞ 운전자는 속도를 유지하고(간혹 속도를 더 높이고), 보행자는 자동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물론 영국에도 과속하거나 보행자 개무시하는 운전자가 있다. 다만 예외적인 경우이고. 한국에서는 보행자 개무시가 보편적이고, 보행자 우선이 예외적인 경우라는 거. 약자일 때 배려나 보호를 받기는커녕 개무시 당하니까, 강자가 되기 위해 살벌하게 경쟁하면서 피로에 쩔어서 사는 사회. 그리하여 약자나 강자나 더불어 불행한 사회...

opinion 2010.02.24

몽상가

2007년 2월 3일 나는 몽상가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웬지 모를 낭만적 뉘앙스가 좋다. 혹자는 이상을 비현실과 동의어로 치환해버리지만, 현실에 대한 나름대로 냉철한 분석을 배제한 이상은 별로 없다. 이상은 현실의 개선을 위해서 존재한다. 하지만 이상이 이상에서 머무는 한, 이상이 현실에 대하여 어떠한 방향이나 방법도 제시하지 못하는 한, 이상은 현실의 개선에 기여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이 없는 현실은 퇴보에 불과하다. 그래서 꿈을 꾼다. 그래서 억지라도 부려보는 거다. 그것조차 하지 않고서는 현실을 버텨낼 수가 없을 것 같으니까. 내가 아는 한, 역사는 꿈 꾸는 자들의 억지에 의하여 추동된다. 물론 억지는 말로만 표현되지 않는다. 억지스런 행동이 수반된다.

opinion 2010.02.21

연대의 바탕

2007년 1월 25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 완결한 개인이 되는 것보다 내가 부족한 것을 당신이 갖추어 함께 도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비록 개인의 부족함은 많더라도 관계는 성숙해질 것이다. 성숙한 관계에서 각 개인도 성장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부족함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성장으로 관계가 성숙해진다기보다는 관계가 성숙해짐으로써 그 안의 개인들이 함께 크는 것. 이것이 연대의 바탕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너는 저것을 갖추는 것.

opinion 2010.02.21

눈물은 이제 그만

1. 나는 야외에서 몸을 움직이는 일들을 좋아한다. 여가시간에 집에서 쉬는 것보다는 등산이나 라이딩을 하거나 밖에서 돌아다니는 걸 더 선호한다. 하지만 특정한 스포츠를 즐기는 건 아니다. 오히려 구기종목 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는 것이나 보는 것이나 스포츠에는 무관심한 편이다. 여기저기서 떠들어대지 않았다면 박지성 선수가 속해 있는 영국의 축구팀 이름을 내가 알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난 그가 뛰는 경기를 본 적이 없다. 김연아 선수의 경기도 한번도 안 봤다. 김연아 선수의 얼굴은 오히려 CF에서 더 많이 본 듯. 2.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국가대항전이 펼쳐질 때마다 횡횡하는 내셔널리즘이나 스포츠 쇼비니즘 따위가 영 꼴불견이라 중계방송 같은 건 꼬박꼬박 찾아보지 않는다. 저녁식사 후 가족이 모..

opinion 2010.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