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39

24시간

1999년. '캐스트러시'라고 나름 최초의 대학생 인터넷방송국에서 웹진 콘텐츠를 제작했던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기획한 아이템 중의 하나가 공간에 대한 문화비평이었다. 그 때 문화과학 그룹의 이론이 유행처럼 회자되던 시절이라. 여하간 나는 편의점에 주목했다. 편의점의 24시간 영업. 이론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무식했던 나의 눈에 포착된 건 바로 24시간 문화였다. 말 그대로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24시간 영업하는. 그 때 내 눈에는 이게 참 문제가 많아 보였다. 왜 우리가 잠 잘 시간에 '소비'를 할 수 있어야 할까? 이게 좋은거냐? 단순했지만, 나름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그 때 쓴 글이 있는데 예전에 사망하신 하드 디스크와 함께 먼 길 떠나셨다. 시내에 나가서 커피 마시다가 깜놀하였다. 햄버거 파..

opinion 2009.12.29

불안은 개나 줘버리고

청년인턴이라고 가카가 하사하신 은혜로운 알바를 하던 시기에 썼던 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격언을 다시 새기며. 그리고 다시 '위로'를 시작한다. 2009.06.15 정년퇴임을 앞둔 직원이 사무실 밖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다. 나는 고개를 꾸뻑 숙이고 옆에 서서 담배를 문다. 그가 말한다. (내가 인턴을 그만 둘 때 그는 '아따, 우리 원종이가 잘 되믄 내가 사위 삼을라고 했는디...' 했다. 빈말이어도 기분 좋았다.ㅋ) "자네도 힘들제잉? 사회생활이란 게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란 말이시...." 멋진 말이긴 한데, 느닷없기도 해서 잠시 뻘쭘하다가 나는 짧게 반응을 보인다. "아, 네...." 하지만 속으론 이렇게 말했다. "저도 취직이란 걸 해서 '나를 잃어버리'기라도 해봤으면 좋겠네요." 생각해보..

opinion 2009.12.18

가카의 교육과정

2009년 개정 교육과정이 확정, 발표됐다. 이른바 '미래형 교육과정'이라고 하여 명박가카의 취미대로 날림으로 급조된 거다. 2007년 개정 교육과정도 올해 3월 초등 1,2학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마당에 국가 교육과정을 바꿔버리는 걸 보면 역시 가카의 추진력 하나는 정말 씨바스럽다. 아마도 교육과정 역사상 최단기간에 이뤄진 개정이 아닌가 싶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이란 게 워낙 정권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면이 있긴 하지만, 가카는 역시 상상 이상을 보여주신다. 뭐 이런 건 명박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익숙한 거니까 넘어가주자. 개인적으로 2009년 개정 교육과정으로 받은 타격이 어마어마하다. 사회와 도덕을 통합하는 바람에 사회과 임고생들은 내년부터 임용시험 티오를 거의 제로로 예상한다. 국영수를 ..

opinion 2009.12.17

새끼 이명박

1. 대개 좌파들은 인간의 개별적 변화보다는 사회구조의 변혁을 강조한다. 자유주의자나 우파가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고 믿는다면, 사회주의자나 좌파는 '세상이 먼저 변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그러나 그래가지고서는 나도 변할 수 없고, 세상도 달라지지 않는다. 김규항의 말대로 나도 변하고 세상도 변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본디 하나'다. 지난 몇년간 어떤 조직적 활동도 배제한 채 극히 개인적 삶을 살아와서일까. 요즘엔 사회구조보다는 '개인'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다. 2. 이명박이 '건설'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는 암울하다. 나는 이명박을 반대하고 혐오한다. 그런데 내가 정말 무서워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는 이명박을 반대하면서도 이명박을 닮아가고 있고, 이명..

opinion 2009.12.10

노회찬은 무죄다

12월 4일. 내일은 중요한 날이다. 먼저 임용시험 1차 합격자 발표를 하는 날이다. 이건 뭐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고. ㅠㅠ 내일은 또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의 항소심 선고공판이 있는 날이다. 노회찬은 안기부의 '삼성 X파일'에 등장하는 전현직 떡값검사 명단을 공개하여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되었다. 1심에서 징역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되면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그러면 내년 서울 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삼성을 비롯해 검은 권력자들이 개입된 사건이기 때문에 사법적 판결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을 할 공산이 커 보이는데. 검찰의 기소도 참으로 코미디다. 노회찬의 말마따나 담을 넘는 도둑을 보고 '도둑이야'하고 소리를 쳤더니, 소리 친 사람에게 도둑질 하는 거 봤느냐며 도둑의 명예를..

opinion 2009.12.03

아휴 답답

명박 정부가 정운찬을 국무총리에 내정했을 때 짱구 되게 잘 굴렸다고 칭찬한 적이 있는데, 취소한다. 정운찬 국무총리 아무래도 물러나야 할 것 같다. 명박을 위해서든 인민을 위해서든, 정운찬 자신을 위해서라도 물러나서 서울대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어느 편에서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정운찬이 나쁜 사람이어서라기보다는 해도해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 무능력하다. 오늘 국회 대정부질문 보는데, 정운찬 이 사람 딱 샌님 노릇하고 있더라. 차라리 유명환 같은 사람이 능수능란한 능력을 보여준다.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진위 여부를 떠나서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빠른 정치적 판단과 대응력은 필수다. 그런데 정운찬은 영 아니다. 보는 인민들이나,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명박 정부나 모두가 답답할 것 같다...

opinion 2009.11.07

판사님들 욕한 건 아니고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는 검찰의 기소 내용을 모두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동영상 체증 자료와 경찰 특공대의 증언에 따르면 철거민 농성자들이 망루 4층에서 3층 계단 쪽으로 화염병을 던졌다고 판단된다"며 발화 원인을 화염병 투척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비록 경찰 특공대원들의 증언이 엇갈리지만 이는 당시 망루 내 상황이 비좁았던 점, 소화기 분말 가루가 자욱했던 점, 상황이 긴박했던 점에 비추어 일치되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인다"며 망루 내에서 화염병을 보았다는 경찰 진술에 무게를 실었다. 재판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경찰특공대 중 1차 진압 당시 화염병을 봤다고 진술한 이는 있었지만, 2차 진압 작전에서 화염병을 봤다고 진술한 대원은 없었다. 재판부는 "비록 농성자 중 누가 화염병을 던졌는지는 알 수..

opinion 2009.10.29

가난을 아는 교사

2002년 11월 한겨레 공채 낙방 직후, 어느 초등학교에서 영어보조교사(영어실력과는 아무 상관 없다)로 한달간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영어교과실이 따로 있어서 4명의 아줌마 교사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거짓말 안 보태고 하루에 한번 이상 택배가 왔다. 수업 없는 교사들은 교과실에서 인터넷 쇼핑을 하고, 쇼핑에 대한 정보를 나누었으며, 시댁 식구들 '뒷다마'를 까댔다. 물론 가끔 교재연구를 하거나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본업도 잊지는 않았다. 이게 완전히 나쁜 짓이라는 생각은 아니다. 오히려 근무시간에 인터넷쇼핑도 하고 이런저런 사담도 나누는 건 직장생활의 재미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교사라고 해서 엄격하게 근무수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사기업에서도 좀 눈치껏 농땡이 피우는 직장문화가 ..

opinion 2009.10.28

타임 리셋

“내 생각엔….” 저우치가 말했다. “당신과 나는 같은 운명인 것 같아요. 우린 모두 상대방의 ‘끝에서 두 번째 여자친구’죠.” 안안은 말을 하지 않았다. “만약 어느날 그가 당신을 잃는다면, 그는 마침내 당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이해하게 되겠죠. 지나간 잘못을 아파하며 뉘우칠 거고. 그러고는 그가 다음 여자를 만날 때는 더 나아지는 거예요. 그는 그녀와 결혼할 거고, 아주 좋은 남편이 되겠죠.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영원히 당신이 있을 거예요….” “그럼 그 부인은 어떻게 그런 운명을 가질 수 있는 거죠?” “사실 그의 부인도 좋은 운명은 아니에요. 그녀는 결혼하지만. 사랑은 얻을 수 없을 테니까. 그 남자는 자신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그녀를 사랑하지는 않죠. 솔직히 난 그의 부인이 아주 운이 나..

opinion 2009.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