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39

"차라리 굶는 애들 밥이나 주지"

10월 13일, 14일 초6, 중3, 고1 학생들은 일제고사를 본다. 196만명이 되는 학생들이 동시에 똑같은 시험문제를 풀게 된다. 책정된 예산은 117억원이나 된다. 내가 다니는 독서실 건물에도 학원이 있다. 간혹 학원 가는 아이들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가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학원으로 빨려 들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이 짠 하다. 한번은 엘리베이터 구석에 머리를 쳐박고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 아이를 보고는 이유없이 미안해지기까지 하더라.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졸라'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쓴다고 눈살을 찌푸린다. 1층에서 아이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면 아이들이 3층에서 내릴 때까지 '졸라'라는 말을 졸라 많이 듣게 된다. 이해해야지. 세상이 아이들을 '졸라' 힘들..

opinion 2009.10.12

출발선

"교사가 하는 일은 결승선에 도달하는 게 아닙니다. 교사는 항상 출발선에 서 있어요. 어디가 결승선인지는 보이지 않아요. 우린 그저 출발선에 서서 아이들의 등을 밀어주면 됩니다. 그 아이들이 달리는 모습을 지켜봐주면 되는 겁니다. 앞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등을 끊임없이 지켜봐주면 되는 거예요. 우리에게 결승선은 없어요.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 아이들이 결승선에 도달했을 때 웃음으로 결과를 말해줄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지타산이 맞는 거 아닐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내팽겨쳐서는 안되는 일이 있어요. 납작 엎드리든 붙잡고 늘어지든 중간에 그만둬서는 안되는 일이 있어요. 교사는 그런 일인 것 같아요. 적어도 3학년 1반 아이들 모두가 졸업장을 받는 날까지는 이 학교에 있고 싶어요."사쿠라이 센세는 이렇게..

opinion 2009.10.03

계획

"도대체 써먹지도 않을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학교 선생님들은 공부를 못한다. 평소 너희들이 보는 시험을 선생님들이 본다면 너희들 같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어른이 되면 공부를 못하게 된다. 그 이유는 너희들이 지금 하고 있는 입시 공부가 나중이 되면 다시는 쓸일이 없는 것들 뿐이기 때문이다. 입시 공부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고생해서 들어간 대학에서 배우는 공부는 훨씬 더 쓸모가 없다." "그럼 공부를 안해도 된다는 건가요?" "아니. 공부는 하는 게 좋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면 금새 까먹을 거 아니에요?" "그렇지. 다만... '벌새의 물 한방울'이라는 이야기 아냐? 남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 전해지는 민담 같은 건데. 어느날 숲에 불이 났다. 숲 속 동물들은 앞다퉈 달아..

opinion 2009.10.02

딴지에 등극하다

오늘 새벽에 잠 못 자고 분기탱천하여 후다닥 날려 쓴 글이 딴지일보 메인에 등극하였다. 써놓고 보니 썩 마음에 들지 않고, 논지도 애매하고, 잘못된 내용도 보이는데 뭐 몇몇 댓글과 답글에서 지적받았으니까 괜찮다. 솔직히 딴지독투하면서 게재될 거라 생각 안한 바 아니다. 왜냐, 게재하라고 작심하고 썼으니까. ㅋㅋ 여하간 실제로 메인에 등극하고나니 기분 괜찮네. 근데 역시 딴지는 글에 손 안대는구나. 제목부터 본문까지 그대로 올렸네. 중간중간에 끼워넣은 사진들은 누가 골랐는지 몰라도 좀 성의 없어 보이긴 하다. 문제의 글을 보시려면 클릭하시라

opinion 2009.09.25

이명박을 욕하는 것보다 노회찬과 심상정의 지지자가 되는 것이 조중동을 욕하는 것보다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시사IN을 구독하거나 돈으로 후원하는 것이 자동차 중심의 폭력적 교통문화를 성토하는 것보다 주로 버스와 자전거를 타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데 더 효과적이고 더 나은 방법이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그 방법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왜 적을까? 불안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욕하면서도 세상이 들이미는 삶의 방식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불안 때문이다. 국가와 자본이 신자유주의를 통해서 인민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것은 바로 불안이다. 이명박은 빠르고 노골적으로 진행시키고 있을 뿐이다. 영화 의 후반부 신민아의 한마디, "사람들은 다 ..

opinion 2009.09.18

문제 있는 문제

6. 다음 자료에서 ㉠과 ㉡을 위한 정책 방향으로 적절한 대답을 한 학생을 에서 고른 것은? 갑: ㉠을 위해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의 불법 체류를 철저하게 관리해야 해요. 을: ㉠을 위해 민족 동질성보다는 보편적 인권에 기초하여 국적 취득 요건을 완화해야 해요. 병: ㉡을 위해 최소한 경제적 측면에서 동일한 대우와 권리를 보장해야 해요. 정: ㉡을 위해 한국의 전통적인 사회적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해요. ① 갑, 을 ② 갑, 병 ③ 을, 병 ④ 을, 정 ⑤ 병, 정 2008년 9월 시행된 수능 모의고사(교육과정평가원) 사회탐구 정치영역 6번 문제다. 지식요소를 평가하는 문항은 아니니까 당신의 상식과 교양으로 한번 풀어보시라. 나는 틀렸다. 평가원이 공개한 정답은 [② 갑, 병]이다. 정답은..

opinion 2009.09.16

생각보다 똑똑해

정운찬씨가 국무총리에 내정되었다는 뉴스에 다들 호들갑이다. 대부분 정운찬씨를 민주당 측 성향으로 알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이명박의 부름에 ok를 했다는 사실에 당황하는 눈치다. 엄밀히 말해 정운찬씨는 민주당 측과 공식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항상 주변에서 말만 무성했을 뿐. 지난 대선 때에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지만, 그 역시 주변에서 일으킨 것일뿐 정작 본인은 가만히 계셨다. 어쨌거나 나는 정운찬씨가 이명박의 국무총리에 ok했다는 것보다는, 이명박측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카드를 생각해낸 것이 더 놀랍다. 이것들이 완전 꼴통 돌대가리들은 아닌 거다. 오히려 민주당보다 똑똑해보인다. 정운찬씨가 소신을 지킬 수 있느냐, 아니면 이명박의 수하가 되느냐 따위에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

opinion 2009.09.05

착한 사마리아인은 못 되더라도

#1 "자원을 절약해야지!" 중학교 2학년 때다. 친구와 동부경찰서 부근 학원가를 걷고 있는데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학원 전단지를 우리에게 건넸다. 그 친구는 망설임 없이 받았고, 나는 외면하며 받지 않았다. 친구가 '왜 받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별 생각 없이 귀찮았기 때문이었는데, 왠지 녀석의 진지한 질문에 그럴 듯한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보지도 않고 버릴 건데, 그건 국가적으로 자원낭비잖아." 친구는 실망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냥 할머니 도와드리는거지..." 색기... 니 똥 굵다... 졸라 쪽팔렸다. 내색은 안했지만. 20여년이 지났지만,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는 그 이후로 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를 무조건 받는다. 일당 몇 푼에 ..

opinion 2009.09.03

1, 2, 3

#1 일본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압승하여 54년만에 정권을 교체하게 되었다 한다. 자민당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일본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민주당의 총선 압승은 일본 인민들의 변화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물론 일본 민주당이 내놓은 정책들이 땜질 처방에 가깝다는 지적도 많다. 여하간 미국에서 오바마의 당선도 그렇고,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에 어떠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한국은? 세계는 신자유주의 이후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MB정권은 레이거노믹스의 흉내를 내는 것 같지만 실상은 6~70년대로 회귀하고 있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바로 작은 이명박이라는 자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불행하게도 MB는..

opinion 2009.08.31

존경

#1 나는 김대중을 찍지 않았다 1997년 12월 18일, 한국의 15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날이다. 그 때 나는 대한민국 육군 일등병 신세. 군인들은 선거날 전에 부재자 투표를 한다. 어느날 오후 중대 막사에는 행정병과 경계근무병 등 최소한의 인원만이 남아 있었다. 다들 부재자 투표하러 버스 타고 떠났다. 나는 행정병도 아니었고, 경계근무도 없었는데 그 버스에 타지 못했다. 선거권이 없었다. 집행유예 기간 중이었기 때문. 생애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도 있었던 날, 나는 그렇게 고참 하나 없는 내무반에서 홀로 왕고처럼 삐댔다. 그런데 만약 내가 선거권을 박탈당하지 않았다면, 김대중을 찍었을까? 아니다. 나는 국민승리21이라는 좀 뜨악한 이름을 달고 나온 권영길 후보에게 내 생애 첫 투표를 ..

opinion 2009.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