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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시간은 간다

한달은 얼렁뚱땅 대충대충 흘러간 것 같고. 3월 2일 용인으로 전직원 워크샵을 다녀온 뒤부터 쎄빠지게 고생 중이다. 군대로 치면 완전 유격훈련이다. 젠장. 쓰나미와 지진으로 일본에 난리가 난 것도 식당 TV에서 잠깐 보고 알았다. 자전거도 못타고, 음악도 출퇴근 때 잠깐 듣는 게 전부고, 영화도 못보고, 책은 꿈도 못 꾸고 그렇다. 딱 '전쟁같은' 날들이다. 상처와 고통 없이 성장할 수 없듯이, 함께 고생하는 경험 없이 서로를 이해하는 건 어렵다. 이기적인 것과 배려 없음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 여하간 사람은 관계 속에서 괴롭기도 하지만 관계로부터 힘과 지혜를 얻기도 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시간은 가고 월급은 나온다.

diary 2011.03.13

A석은 1만원

퇴근 직전 광주시향 정기연주회 예매를 완수(!)해냈다. 역시나 이런 건 근무시간에 하는 게 훨씬 즐겁다. 비록 가장 저렴한 A석이긴 하다만, 구자범의 지휘를 보게 됐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임기가 끝난 구자범의 고별무대라고 하니 뭐 계단 구석에 앉아 있는들 어떠랴. 연주곡 선정이 그닥 내 맘에 들진 않다만, 심장의 찌든 때를 좀 벗기기에 부족하진 않을 것 같다. 찾아보니 이번 연주곡들이 담긴 앨범이 모두 있다. 씨익 만족스런 웃음 지어주고, 일단 엘가 첼로 협주곡부터 듣고 있다. 슈트라우스의 '박쥐'는 카라얀 지휘 버전으로 있고, 엘가의 첼로 협주곡 작품번호 85번은 러시아 최고의 마에스트로 나탄 라클린이 지휘하고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연주가 심장을 쥐어짜는 음반이 있다. 대미를 장식..

music 2011.02.15

게리 무어도 가고...

그러니까 월요일 출근해서 컴퓨터를 부팅. 인터넷을 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소식은 게리 무어의 사망. 한 시대를 풍미했던 뮤지션이 또 한명 떠났구나... 그러고 오늘에서야 기타 신의 'Still Got The Blues'를 듣는다. 미치게 울어제끼는 기타 음이 가슴을 아주 그냥 후벼판다. 그나저나 게리 무어는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났고, 그의 음악에는 아일랜드 특유의 서정적이고 애잔한 느낌이 진득하게 묻어나는데 몇몇 언론 기사에서는 '영국의 기타리스트'라고 소개했다. 물론 북아일랜드가 영국이 지배하는 땅이고, 게리 무어가 10대 때 영국으로 건너가 활동하기도 했다만. 그를 아일랜드의 영웅으로 생각하는 Irish들에게는 좀 기분 나쁜 일이 아닐까 싶다. 여하간 나에게 게리 무어는 아일랜드가 낳은 뮤지션이다..

music 2011.02.10

계절도 양극화?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는 말이 있다. 신영복 선생은 에서 교도소에 사는 이들은 여름보다 겨울을 선택한다는 사연도 전하고 있다만. 어쨌거나 정말 살기 힘든 겨울이 된 것 같다. 어진간 해서는 추위를 안 타는 편인데, 이번 겨울추위는 정말 장난이 아니다. 낮 동안에는 좀 나은데 아침이나 밤에는, 와 정말 밖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안든다. 요즘엔 밤에 하는 운동도 그냥 동네 한바퀴 걷고 들어오는 것으로 대충 떼우고 그런다. 취직도 차라리 봄에 할 걸 하는 배부른 생각도 들고. 이렇게 춥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겨울은 태어나 처음인 것 같다. 군대에서 겪은 겨울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고. 그나마 남쪽 지방에서 사는 것에 감사할 뿐. 삼한사온도 옛말이고, 이젠 삼한사한이란다. 3일간 허벌나..

diary 2011.01.16

오세훈과 이념 대립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면 무상급식 시행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주장했다. 시의회가 통과시킨 조례까지 거부하면서 똥고집을 부리고 있는 오세훈 시장의 행태에 수긍할 만한 구석은 눈꼽 만큼도 없다. 그런데 무상급식에 대한 오세훈 시장의 병적인 거부반응이 반갑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념 대립의 시대가 열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오세훈 시장의 줄기찬 무상급식 발목잡기는 한국 정치가 드디어 질적 발전을 시작했다는 신호탄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소위 '이념 대립'이란 건 색깔론 따위처럼 이념을 껍데기로 한 치졸한 정치 공세에 불과했다. 한국전쟁 이후 인민의 삶을 내용으로 정치세력 간 이념적 대립이나 갈등을 벌인 적이 있었나? 진보세력의 이념적 주장에 대해 보수세력은 '비현실적'이라고 매도하거나 '빨갱이'라고 색칠하면 ..

opinion 2011.01.10

황해 : 웰메이드만으론 부족해

한국 액션영화의 불길한 미래를 보고 온 것 같다. 물량공세를 방불케 하는 대형 자동차 액션 씬과 배우들이 고생깨나 했을 것 같은 거친 싸움 씬에도 불구하고 영화 는 기억에 남는 장면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졸작이라고 폄훼할 정도는 아니다. 에서 느꼈던 몰입도를 기대해도 좋고 꽤 웰메이드이기도 하다. 하지만 피칠갑과 지나치게 잔인한 폭력, 칼과 도끼가 살을 파고드는 섬뜩한 사운드에 의존하는 액션 씬은 시즌 2(?)를 보는 것 같았다. 잔인한 장면 자체를 문제 삼는 건 아니다. 필요하다면 목을 베고 피가 솟구치는 B급 장면인들 어떠랴. 하지만 시각과 청각을 말초적으로 자극하는 것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면 관객에게 남는 건 실망이다. 이소룡의 마지막 영화 에서 거울의 방에서 벌어진 마지막 결투 씬을 떠올려 ..

movie 2010.12.28

우리는 과연 '정의'에 목말랐을까?

마이클 샌델의 는 출판계를 넘어 '사회현상'이라고 할 만큼 이슈가 된 책이다. 여기저기서 하도 많이 들어서 책을 사지도 않았는데 책을 다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어진간한 술자리에선 이 책이 잠시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했고. 독서 여부와 상관없이 책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상식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사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다만, 결국 구입하지 않았다. 어떤 일이 '현상'이 되고, 회자되기 시작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이 내 버릇이다. 개봉을 기다리던 영화인데 갑자기 몇백만 흥행돌풍 어쩌고 하는 소식이 들리면 급 시들해지기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는 최대한 개봉 직후에 보려고 하는 편이기도 하고. 한국의 인구 수준에서 정말 좋은 영화의 적정 관객 수는 많이 잡..

opinion 2010.12.27

희극

슬프니까 우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배고프니까 밥을 먹는 일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슬픔을 슬퍼하되 슬픔을 희극의 자원으로 삼는 일은 목적의식이 필요하다. 인생은 주로 비극이고 희극은 비극 없이 만들어질 수 없다. 채플린이 위대한 건 비극적 현실을 희극으로 표현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비관을 배제한 낙관은 얼마나 유약한가! 절망을 겪지 않은 희망은 얼마나 허무한가! 슬픔을 품지 않은 기쁨은 얼마나 빨리 소멸하는가! 단 한번의 희극을 위해 수도 없는 비극을 담대하게 맞이하는 것. 뒤돌아본 삶이 그러하고 앞으로 닥칠 삶도 그러할 것이라는 점. 서른네살의 막바지 날들에 흥분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우면서도 다행스럽다.

diary 2010.12.24

책 <김예슬 선언>

오늘은 약속했던 라이딩을 떠났는데, 출발 30분만에 호남대 정문에서 널부러져 보온병에 담아온 온수로 기어이(!) 컵라면을 먹으려는데, 한 사람분 온수가 부족하여 도서관 정수기까지 다녀오는 수고를 했고, 함평 월야면에 가서 복분자에 절인 한우 고기를 먹고 막걸리도 한잔씩 마셨으며 육수에 밥을 비벼 먹은 뒤 광주로 돌아오자마자 W 형의 작업실 이사를 돕느라 진땀 조금 빼고 사례로 기네스 1병과 비누 1개를 득템하고, 후루룩 짭짭 맛있는 해물탕을 얻어먹고 집으로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동네 피자집에서 5천원짜리 고구마 피자를 사와서 부모님이랑 맛나게 먹은 하루였다. 즐겁고 고생스러우면서 배도 부른 하루였지만,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책을 드디어 손에 넣었다는 것. 2주쯤 전인가,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에 박노해 사진..

opinion 2010.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