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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코스

요즘 새로 구성한 코스로 라이딩을 한다. 집->풍암저수지->매월동->서창뚝방길->극락교 찍고 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이렇게 왕복하면 총 22km 정도 되는 거리다. 자동차를 가장 피할 수 있는 코스이다. 그래서 매연도 덜 마시고, 시끄러운 소음도 없고, 무엇보다 뚝방길 한쪽으로 푸른 벼가 익어가는 논이 펼쳐져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영산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풍광이 제맛이다. 뚝방길에는 간간히 자동차들이 다니는데 몇몇은 고속도로인양 살벌한 속도로 달린다. 좀 한다는 라이더들에게는 뚝방길이 제법 알려져 있어 간혹 마주치기도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이지만, 두 바퀴를 굴리고 있다는 동질감만으로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눈다. 고개 한번 까딱할 뿐인데도 슬며시 미소지어지는 재미는 해본 사..

bicycle 2009.09.02

1, 2, 3

#1 일본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압승하여 54년만에 정권을 교체하게 되었다 한다. 자민당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일본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민주당의 총선 압승은 일본 인민들의 변화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물론 일본 민주당이 내놓은 정책들이 땜질 처방에 가깝다는 지적도 많다. 여하간 미국에서 오바마의 당선도 그렇고,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체제에 어떠한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한국은? 세계는 신자유주의 이후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MB정권은 레이거노믹스의 흉내를 내는 것 같지만 실상은 6~70년대로 회귀하고 있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바로 작은 이명박이라는 자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불행하게도 MB는..

opinion 2009.08.31

존경

#1 나는 김대중을 찍지 않았다 1997년 12월 18일, 한국의 15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날이다. 그 때 나는 대한민국 육군 일등병 신세. 군인들은 선거날 전에 부재자 투표를 한다. 어느날 오후 중대 막사에는 행정병과 경계근무병 등 최소한의 인원만이 남아 있었다. 다들 부재자 투표하러 버스 타고 떠났다. 나는 행정병도 아니었고, 경계근무도 없었는데 그 버스에 타지 못했다. 선거권이 없었다. 집행유예 기간 중이었기 때문. 생애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도 있었던 날, 나는 그렇게 고참 하나 없는 내무반에서 홀로 왕고처럼 삐댔다. 그런데 만약 내가 선거권을 박탈당하지 않았다면, 김대중을 찍었을까? 아니다. 나는 국민승리21이라는 좀 뜨악한 이름을 달고 나온 권영길 후보에게 내 생애 첫 투표를 ..

opinion 2009.08.28

'함께 살자'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이 '영웅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참담한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며칠이 지난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딱 하나다. 그것은 하루에도 수십개의 최루액 폭탄을 퍼붓고 24시간 쉬지 않고 공장 주변을 선회하고 선무방송을 하면서 노동자들의 짧은 수면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고약한 경찰헬기도 아니고, 도장2공장 옥상에 투입된 경찰특공대가 노동자들을 개패듯이 폭행하는 깡패짓도 아니며, 물과 전기를 끊고 의료진의 출입마저 허가하지 않았던 경찰의 반인권적 짓거리도 아니다. '노사간의 문제다'라며 팔짱만 끼고 있는 '척' 했던 정부의 '수수방관'도 아니고, 정리해고 대상에서 제외된 사측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한 동료 노동자들에게 새총을 겨누는 마음 아픈 장면도 아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

opinion 2009.08.14

다시 페달을 밟으며

지난 해 9월 사고 이후 거의 1년만에 다시 페달을 밟는다. 하루에 잠깐씩 운동삼아 타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한다. 처지가 처지인지라 장거리 라이딩은 떠날 수 없지만, 좋다. 그런데 인근에 마음놓고 속도를 낼만한 코스가 없다는 점이 아쉽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몸이란 것이 참 대단하다. 거의 1년여만에 타는 거라 몸이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 예상했는데, 웬걸. 며칠 타고 나니까 몸은 금새 예전의 라이딩 스킬을 모조리 재생해냈다. 물론 아직 근력이 예전만 못하니까 페달링할 때 RPM을 유지하면서 속도를 낸다든가 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좋다. 나는 자전거 타는 것이 좋다. 돈 들이지 않아도 내가 사는 곳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도록 해주고,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거리 만큼 자유롭게 이동시켜주며 내..

bicycle 2009.08.11

'수리'

철학하는 사람 k는 이렇게 말했다. 반복되지 않는 행동을 일러 용서할 수 있는 '실수'라고 하는데, 반복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고장난 기계를 '용서'하지 않고 '수리'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이 실수의 뜻이다. 관계에서 일어나는 실수는 대개 안타까운 것들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선한 마음과 신중한 고민 끝에 행동했더라도 상대방에게는 악행이거나 성급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관계는 언제 어디서나 상대적이기 때문에 순간 어긋나버리는 것은 일도 아닌 무시무시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중한 관계일수록 배려의 긴장 속에서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실수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 앞에서 허망하게 무너지기도 한다. k의 말마따나 ..

diary 2009.07.15

적당히 살자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안입고 안먹고 악착같이 돈 모으고 대출받아서 아파트 한채 샀다'는 사연이 올라왔다. 글 아래에 이러쿵 저러쿵 댓글들이 올라왔는데 먼저 대표적인 댓글들을 보자. ●아직도 집 장만에 목숨 거는 젊은이들이 많은것 같네요. 대출까지 무리하게 받아가며 그럴 필요 있을까요? 전세 살면 어떻습니까? 삶을 좀 여유롭게 즐기면서 살아보세요. ●양도 차익도 별로 없을테니 빨리 처분하시고 그냥 전세사세요... 언젠가는 전세가 밑으로 집값이 떨어질 날 올 것입니다. ●글쓰신분 대단하세요,,성공하실겁니다..세상의 모든 와이프들을 응원합니다. ●집이 우선이 되는 이 사회가 싫긴하지만 어쩔수 없죠..이게 현실이니..^^; 암튼 고생했습니다. 집 장만하셨으니 앞으로는 약간은 누리(?)면서 사세요. 아 ~ 근데..

opinion 2009.07.14

노땡큐

나는 가끔 A선배와 소주 한잔 나누는 걸 좋아한다. 그나 나나 그리 수다스러운 편은 아니다. 특히 A선배는 1분 이상 말을 지속하지 않을 정도로 '과묵'하다. 둘 사이에 화수분처럼 이야기 소재가 무궁무진한 것도 아니다. 둘이 공감할 만한 소재라고는 한때 음악 매니아였던 A선배에게 라디오헤드가 어떻고, 그린데이가 어떻고, 니르바나가 어떻고 하는 것 뿐이다. 그것도 깊이 있는 음악평론은 꿈도 못 꾸고, 그냥 아는 곡 이름이나 들이대고, 커트코베인의 죽음이 자살이냐, 타살이냐 하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다. 정리하면 술자리에서 떠들썩하거나 종종 웃음을 터뜨리는 재미 따위는 거의 기대하지 않는. 뭐 그런 '썰렁한' 분위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A선배에게 '소주나 한잔 합시다'라고 전화한다. A선배에게는..

diary 2009.07.09

끓는 점

물은 100°C에서 끓는다. 10°C에서부터 열을 가하여 80°C가 되었다고 해서 물은 끓지 않는다. 80°C에서부터 열을 가하여 99°C가 되었다고 해도 물은 끓지 않는다. 임계치다. 임계치를 넘어서지 못하면 결국 '변화'는 없다. 아무리 열심히 열을 가했다 하더라도 끓는 점을 넘어서지 못하면 물은 끓지 않는다. 50°C가 부족했든 1°C가 부족했든 상관이 없다. 그냥 물은 끓지 않은 것이다.

diary 2009.07.08

씨발, 15년 걸렸네

부모가 시키는대로(원하는대로), 학교가 지시하는대로 살아왔던 시기는 제외하고. 내 인생을 스스로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최초의 때로부터, '한번 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리기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다. 다시 '하고 싶은 것을 행복하게 하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결론으로 수정되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 젠장, 이게 또 수정되었다. '하고 싶은 것을 행복하게 하고 살기 위해서는 해야 하는 일(대부분 안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들을 묵묵히 감수하며 해내는 의지와 능력을 갖춰야 한다' 여기까지 다시 1년이 걸렸다. 빌어먹을! 고작 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결론을 내려고 15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을 보내야 했단 말인가. 씨발! 내가 무슨 오대수냐, 15년이라니! 라고 한탄하면 ..

diary 2009.07.01